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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많은 열무를

by 愛야 2014. 9. 11.

 

 

 

 

#1.

그 많은 싱아 아닌 열무를 누가 다 먹었느냐고 물으신다면, 바로 접니다 하고 손을 번쩍 들 것이다.

개뻥이라고?

나 혼자 먹은 양이야 통틀어 몇 단 될까마는 심정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여름 초입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먹고 있으니까.

여름에 먹어줘야 하는 3대 식품 중 하나가 열무라고 하였다. (나머지 2가지는 기억이 안 나서 먹을 수가 없다.)

열무에는 인삼처럼 사포닌이 많고, 보송보송한 솜털과 섬유질이 장을 청소해주며, 암튼 몸에 무지 좋단다.

인삼보다 싸고 맛까지 더 훌륭한 열무를 안 먹을 이유가 없다.

 

오늘도 아침부터 열무 비빔밥을 거하게 먹었다.

아삭하고 시원한 맛은 질리지도 않는다.

열무를 잘게 썰어 많이 넣고 밥양은 적게 할 것, 반대로 조합하면 배만 뚱그렇게 튀어나올지 모르니 주의할 것.

아 물론 고추장과 참기름과 계란 프라이는 필수구성요소이고 김가루는 선택사항이다.

 

나는 바보같이 여름이 지나면 열무가 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깊은 가을에도 열무가 시장에 나오는 사실을 작년에 발견했다.

이상한 것은, 찬바람 부는 계절엔 열무를 사고 싶지 않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올해는 우야든동 열무가 시장에서 사라질 때까지 먹어볼 기특한 결심을 하였다.

 

 

 

#2.

세수를 하는데 오른쪽 볼에 무언가 자국이 만져졌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크헉, 관자놀이께부터 비스듬히 아래로 베개 자국이 생겼다!!

그것도 꽤 선명하고 길다.

이 칼자국을 어쩌나.

탄력 없는 노화피부는 원상회복이 거북이걸음이던디.

 

뭐 누가 내 얼굴을 보겠어?

나는 당당하게 버스를 타고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내 자국을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속으로 재미있어하지 못하게, 손바닥으로 볼을 고독하게 괴었다.

하지만 오래 고독하지 못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손을 내리고 달라진 거리풍경에 골몰하고 있었다.

아무리 따갑다고 우겨도 창밖의 얇아진 햇살은 가을이었다.

 

오늘 밤에는 똑바로 누워 잘까?

입관체험도 아니고, 바로 누워 잘 자신이 없다.

똑바로 누워 입 벌리고 코 골다가 컥컥대며 깨는 기분, 참 거시기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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