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울지 않는다

愛야 2008. 4. 23. 13:24

 

1. 

비가 투덕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밤 3시. 비 소리에 잠을 깰 시간은 아니다. 잠든 지 겨우 두어 시간. 얕은 잠이었나. 의식이 의식되지 않는 어두운 수면의 세계에서 넋을 두고 자고 싶건만.

 

2.

비 온다. 봄이니 봄비인가. 비 안개로 먼 산자락이 뿌옇다. 오후에 비 그친다고 했다. 해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비 오다가 슬그머니 개는 날씨는 배반스럽다. 가라앉힌 감정세포들이 갑자기 들이대는 햇살을 감당하지 못한다.

 

3.

며칠째 감기. 엉뚱한 목소리가 아침이면 잠긴 목에서 나온다. 이젠 열은 없다. 가끔 기침하고 코만 좀 풀어주면 되는 감기의 마무리 단계. 

 

4.

이웃의 글에서 국수를 본다. 국수에 꽂힌다. 점심으로 국수를 삶는다. 물이 끓는 모양을 우두커니 지켜서서 내려다 본다. 바닥에서 물방울이 오른다. 한 개, 서너 개, 와르르. 바닥에서 모든 조짐이 생겨 위로 솟구친다. 바닥에서? 거기 무엇이 있기에? 나 서 있는 여기는 아직 바닥이 아닌가? 국수를 예술적으로 부챗살로 펴 넣는다. 일인분.

 

5.

나는 울지 않는다. 그러나 웃지도 않는다. 세월을 건너오는 어디쯤에서 감동이 증발되었다. 그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