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꽂이를 청소한답시고 먼지를 털고 책을 바로 꽂았다. 이제 책이 얼마 없다. 이사 몇 번에 책을 많이 버렸었다. 옛날의 책들은 읽기가 힘들어져 앞으로 활용이 희박해 보였다. 활자는 너무 작은데 내 눈은 노안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아래 위 이층으로 나눠져 있거나 세로쓰기 되어 있는 책들은 정답기는 할지언정 이미 흘러간 조판이었다. 책도 원래는 나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겁긴 좀 무거운가, 아들 세대까지 절대 내려갈 것 같지 않아 아깝지 않은 책은 내 선에서 과감히 버렸었다.
새로운 제본의 산뜻한 신판을 사 읽어라, 너희가 살 미래는 책마저도 필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엄마는 옛 책을 간직하고 싶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남겨진 책을 이것저것 들여다 보았다. 그러다 작은 문고판 책을 한 권 발견하였다. 카키색 표지의 삼성 출판사 < 한국 문학 전집 > 100권 중 단 하나 남아 있는 1권 김동인<운현궁의 봄>이었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이 문고판 시리즈를 읽던 시절과, 오로지 읽은 소설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학교에 갔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문고판 삼성 출판사의 34번째의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소설이었다.
이것은 세계가 自由와 平等, 이 두 진영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던 시절,
朝鮮이라고 하는 조그만 나라에 있은 한 私生兒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동양에 있는 나라였고 <자유>와 <평등>은 서양에서
생긴 물결이었습니다. 이 自由와 平等이 核戰爭을 일으켜 결국 人類前史에
終焉을 고하게 하는데, 6.25 動亂이라고 하는 그 前哨戰과 같은 전쟁이
벌어진 곳이 바로 이 조선이라는 땅이었습니다....略....
이 자유와 평등은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르네상스에 있은 <自我의 發見>에서
싹이 튼 것입니다. 그들은 自我를 發見했다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이
두려워 밤이고 낮이고 고개를 숙이고 祈禱만 드리면서 살다가 암만해도
재미라는 것이 있는 것 같지 않아서 그중 몇몇 사람은 서로 짜 가지고 몰래
곳간에 들어가 먼지 속에서 옛날 그림책을 찾아 꺼내다 펼쳐 보았더니
거기에는 자기들과 꼭 같은 모양을 한 인간들인데 祈禱를 하고 있는 모습은
하나도 없고 모두들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略......
그들은 소리소리 외쳤습니다. 우리는 <人間>을 發見하였노라고.
ㅡ장용학의 <圓形의 傳說>제 1장 도입부
장용학의 소설을 미친 듯 읽었던 것은 고등학교 2년 여름방학 무렵이었다. 아버지의 책꽂이를 가득 메우고 있던 <思想界> 중 어느 한 권을 읽다가 1962년에 연재되었던 <圓形의 傳說>을 본 것이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골치 아픈 관념적 서술과 한자실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몰입하였다.
수북히 <사상계>를 쌓아놓고 홋수별로 찾아 읽느라 밤을 새웠다. 가끔 빠진 홋수로 인해 맥이 끊어지기도 했는데,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온 오빠 덕분에 저 문고판 시리즈에서 단행본을 읽게 된 것이었다. 발표된 지 10년이 더 지났으니 이미 평가는 끝나 있을 작품이었으나 짧은 안목의 나에게 그것은 가히 벼락처럼 다가왔다 하여도 지나침이 없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날카롭고 냉혹하면서도 슬프기 그지 없는 소설이었다.
전후 작가로서 장용학을 빼곤 거론할 수 없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 했던 고 2, 무엇이 나를 매혹시켰을까. 물론 제목은 예나 지금이나 치기스러웠다. 융(JUNG)을 듣기도 전이니만큼(지금은 잘 안다는 뜻이 아니다) 圓形이 융의 原型과 상관이 있을까 고심할 필요는 없었다. 그의 말처럼 "같은 자리에서 春夏秋冬을 되풀이한 植物的 계절성이랄까 <輪廻>的인" 이야기란 뜻이다. 처음과 끝이 닿아있는 동그라미," 中心이 없는 圓"이다.
오빠가 누이동생을 근친상간하여 태어난 李 章은, 뻔뻔한 양부모가 의용군에 "제발" 나가달라고 부탁하는 순간부터 사랑이니 인간적이니 하는 것을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의용군에 나가서 포로로 잡힌 그가 종전 후 큰 이념도 없이 북쪽에 남은 이유는 출생지가 평양근처인 "방골"이란 말을 좇은 것뿐이었다. 자신의 출생을 추적하고, 남파간첩이 되어 7년 만에 남쪽으로 내려온 그는 국회의원이 된 아버지 오택부를 찾아내고 그의 딸이자 자신의 이복동생인 마담 버터플라이를 사랑하게 되는 비극을 겪고 함께 죽는다. 아버지가 저지른 꼭 같은 운명이다. 그래서 圓인가.
줄거리를 적고 보니 유치하고 지나치게 극적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갈등하는 내면을 저급하지 않게 만든 것은 당시로선 드문 그의 문체나 구성이 아닐까 한다. 당시 이호철, 이범선, 김성한, 서기원 등 일련의 작가들은 기본에 충실한 문체와 구성이었다. 즉, 소박하고 극히 한국적일 뿐 도발적인 무엇은 아니었다. 독자들은 작가의 소설적 장치를 따라 가는 사이 그 기승전결과 주제를 암시 받음이 어렵지 않았었다.
장용학의 소설에는 예상되는 상투성이 없었다. 어떤 땐 우습게도 작중인물의 의중을 작가도 모르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사건의 의외성 뿐만이 아니다. 주인공 李 章의 내면은 냉소와 자기 탐색과 비하가 너무나 복잡하게 버무려져 있어서 어느 순간 어느 형태로 사건을 이끌어 갈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루는 수용소 소장이 그를 불러서 갔습니다.
"동무는 다른 포로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있다는데 무슨 까닭이오?"
"포로들의 動態를 알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협력해 주겠다는 말이오?"
"스파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진정이라면 동무는 여기 포로 수용소에 있을 필요 없소. 석방시켜 주겠소(略)"
"그런 것이 아니고 여기서 그저 스파이를 해 드리겠다는 말입니다."
"동무가 하는 말은 도무지 알 수가 없소. 스파이는 왜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거요?"
"저들은 나를 스파이라고 했습니다."
"동무, 그만 두오! 여기가 무슨 兒童 수용소인 중 아오!"
소장에게 불리어 갈 때까지는 스파이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이장이였습니다.
독자도 물론 그가 그런 말을 하리라는 귀뜸을 작가로부터 받지 못 하고 있던 중이라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매사가 이런 방식이다. 그가 아버지를 찾아내는 방법이나 죽이는 순간, 작가는 제3의 눈으로 그를 철저히 객관화시켜버린다. 반면 그의 관념세계나 세상을 향한 독백에는 작가가 개입하여 독자를 골치 아프게 끌어가고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일관된 시점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시점을 달리 하는데, 자칫 결점으로 보일 그것마저 나에겐 또 매력이 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냉혈하고 냉소적 문체야말로 어린 나를 흡입시켰던 가장 큰 요소였다.
겉으론 냉혈하게 보이나 속으로 눈물이 철철 흐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은 여고생 특유의 감수성 탓만은 아니리라.
"아까 孟子라고 하셨는데..."
"최고로 오백 만원 주겠다. 이 이상은 한 푼도 더 낼 수 없다!"
"수영복을 찢는 맹자도 있나요?"
"뭣이...오냐 오냐...."
"권총이 있으면 쏘시겠습니까?"
"뭐라구?"
"빌려 드릴까요....."
자신의 아버지 오택부를 찾아가 자백을 요구하는 장면인데 그 권총으로 결국 아버지를 죽이는 사람치곤 너무 담담한 태도지 않은가. 담담함은 의욕이 없음에서 오는 것이었고 삶의 시작부터 허무한 그는 차라리 철학적이지 말았어야 행복할 인물이었다. 그의 작품 속 인물의 총체적인 태도가 거의 이러하다. 人間에 대한 정의, 본질적 속성을 끊임없이 반문하고 탐색하되 극복의지는 아예 없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적>은 서로 대적하고 있다" 는 자각, 항상 외부에서 바라보는 입장을 고수하며 냉혹한 어조로 인간인 자신의 실체를 비하 조롱 회의한다. 뒤 이은 전후작가인 손창섭의 무기력한 인물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6.25 전쟁이라는 未曾有의 전쟁 후 실존과 인간에의 허무주의가 냉소적인 문체를 만들었다 해도, 그의 태도는 같은 경험을 다루는 기존 작가와 확연히 달라 보였다. 이것도 소설이냐는 비난도 함께 받았지만, 전쟁을 뼈아프게 겪은 작가로서 그 정도의 파격과 탈피는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닌가. 그의 소설이 5,60년대엔 공감을 얻었지만 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빛을 잃어간 것도 어쩌면 전쟁의 후유증에만 오롯이 사로잡힌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다른 작품세계에의 분석이나 가치 등은 여기서 말할 부분이 아니니 밀쳐 버리자.
그런데, 다시 읽은 그의 글에서 나는 예전과 다른 내 마음을 눈치챘다. 냉소적이고 삐딱한 그의 글이야 여전하지만 나는 거기서 무한한 유머를 느낀 것이다. 유머를 염두에 둔 작품이 아님이 명백한데도 나는 아주 웃음이 나는 것이었다. 의표를 찌르는 표현 탓인가, 아 참 그래 하는 심정...그래서 솟아나는 들킴의 웃음.
그 당시 인간이란 先天的으로 거짓말장이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으로 理性을 가졌다든지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든지 하는 것을 걸핏하면
내세우지만 그런 것보다 더 뚜렷한 특징은 그들이 거짓말을 잘 하고 또 거짓말에
잘 속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밥을 먹는 입으로 소리를 내야 하는 동물의 조건을
초고도로 활용한 존재들이었습니다...略...미덕이 되는 거짓말도 있었습니다.
추워도 안 춥다고 하고 배가 고파도 안 고프다고 해야 사람답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을 고상히 여기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을 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들이 성인이라 해서 최고로 받들었던 私生兒인 예수부터가
자기 어머니더러 <女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해서 사람들을 크게
감동시켰는데,..略... 이런 점, 인간은 예수부터가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던 것입니다.
감격이라는 실용적 가치를 자아내는 것이라야 진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진리였기
때문에 감격한 것이 아니라 감격했기 때문에 진리가 된 것입니다.
지금은 2006년, 그가 인간 상실에 고통받던 5,60년대에서 멀리 와 있다. 허나 가만히 보면 그때 그가 철학처럼 써 나갔던 소설이 작금의 인간 상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훗날 아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책꽂이에서 누런 책을 발견하여 읽는, 또 다른 <圓形의 전설>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