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을 요란히 열다.

愛야 2007. 3. 27. 23:10

 

핸드메이드 그림의 밥그릇입니다.

사이즈가 아들넘 밥 퍼주기에 적절하여 가끔 사용합니다.

가끔이라 하니 아들 밥을 띄엄띄엄 주나 싶으십니까?

쓰던 그릇이 싫증나면 다른 것으로 가끔 바꾸어 쓴다는 뜻입니다.

이쁘지요?

 

자, 그릇을 삥 돌려 보겠습니다.

 

 

 

 

 

요렇게 깨 묵었습니다.

무릇 모든 사물은 한면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답니다.

 

저는 그릇을 잘 깨뜨리지 않을 뿐더러 그릇 이가 나가게도 안 합니다.

혹 살림을 등한히 해서라고 짐작하실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워낙 손길이 섬세하고 행동이 조신하다 보니 그릇 깰 일이 도무지 없더군요.

사실 그릇은 자주 깨 줘야 새로운 디자인의 것을 합법적으로 장만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릇 한 번 사면 마르고 닳도록 사용해야 한답니다. (으...지겨워)

 

그런데 오늘 아침 7시도 되기 전, 저 그릇을 툭 건드렸는데 바닥으로 떨어지며 깨졌습니다.

미신을 믿지는 않지만 하루가 시작되려는 입구에서 잘 안 깨던 그릇을 깨뜨리다니 기분이 나쁘더군요.

아들에게 오늘 하루 조심하라고 할머니 같은 당부를 했습니다.

 

옛날 우리 언니가 대학시험에 떨어지고 나니 엄마가 그러더군요.

시험치러 서울 가는 날 새벽에 니 언니가 요강을 깨뜨리더라.

세수하러 간 애가 장독대에 있는 요강을 뭐하러 발로 건드렸는지

겨울에 언 요강이 그냥 팍 깨지데, 내 아무말 안 했다만 시험 떨어지겠다 싶었다.

 

친정엄마는 아침 출근하는 제게 종종 오늘 하루 조심해라 하시곤 했어요.

에이 엄마 또 나쁜 꿈 꿨어? 아니면 뭐 깨뜨렸어?

제가 헤실헤실 웃으며 대수롭잖은 듯 말하면 그냥 조심해라고 하셨어요.

엄마는 미신을 믿지도 않으세요.

하지만 아침에 언짢은 일이 생기면 꼭 당부를 하셨어요.

기실 미신이네 꿈이네를 따질 필요가 없는, 기분에 관련된 일이예요.

그건 집 나서는 자식에 대한 본능적 불안감 같은 것이니 안심하시게 예 하면 끝나거든요.

 

그런데 엄마의 그 말을 오늘은 제가 하고 있었답니다.

오늘 하루 조심하여라...

물론 아들은 옛날 저처럼 콧방귀를 흥 뀌더군요.

점점 나 앞서 걸어간 사람들과 같아지는 나에게 깜짝 놀라는 일이 잦네요.

 

다행스럽게도 오늘 하루 아무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내일이 오려면 아직 몇 시간이 남았고

아들은 무사귀환 전이지만 학원 의자에 붙들려 있으니 별 변고야 있겠습니까.

오늘 하루 나쁜 일보다 오히려 기분 좋은 일이 몇 가지 있었답니다.

아침에 깨뜨린 건 액땜이 아니었나 싶군요.

불운을 와장창 쫓아낸다, 뭐 그런 것 말입니다.

아님 말구요.

 

밥그릇 4개, 국그릇 4개가 한 세트인데 밥그릇이 하나 부족하게 되었네요.

짝이 맞으려면 국그릇도 마저 깨뜨려야 하나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