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수업료

愛야 2007. 8. 7. 11:26

얼마 전 아들이 옥션에서 MP3를 샀다. 검색하자마자 대뜸 주문했다고 하길래 속으로 너무 성급하구나 생각했다. 빨리 사고 싶은 마음에 이곳 저곳 둘러보고 괜찮은 걸 결정할 여유가 없었나 보았다.

 

 

나는 구입과정에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 3만 몇 천 원 가량의 결제까지 마치고 나선 그날부터 택배 기다리느라 눈이 빠졌다. 익일 배송은 개코, 3일 후에야 근근히 왔다.

 

아들이 몇 년 전부터 귓구멍을 틀어막고 살았던 i river MP3는 구형이고 용량이 적었다. 노래 몇 곡 넣지 않아 다 찬다며 투덜거렸다. 나는 용량이 적다는 거 뿐이지 고장난 게 아니니 그냥 써라고 했다. 그것보다 시급한 게 얼마나 많은데 니 MP3 바꿔줄 겨를이 어디 있냐고 밀쳐 두었다.

 

그러던 중 지난 유월인가, 전국 모의고사가 있었다.

학교에서 독려의 목적으로 전교 1등급 학생에게(전국이 아님.ㅎ) 장학금 10만 원씩을 주겠노라 했단다. 뒷걸음 치다가 쥐 잡은 실력으로 아들은 방학때 장학금 10만원을 받게 되었다.

(좀 마~니 줄 일이지, 꼴랑 10마넌이 뭐꼬, 맨날 명문 동창회 자랑만 해 쌓더마는....엄마 생각.)

 

엄마, 이 돈 내가 알아서 써도 되나?

그래도 장학금 명분인데 장학스럽게 써야 되는 거 아이가?

반 칭구들이 한 턱 쏘라 해서 아이스크림 항개씩 돌리고...음... 엄마 2만원 주께 지난 번 그 샌들 사라.

그라고 남는 거는 머할라꼬? 책 살래?

아니, MP3 살 거다. 사도 되제?

아...으...꼭 그래야 하겠나?

꼭 살 거다!

알았따아.

 

사건의 전말이다. 나는 MP3가 그리 싼 줄 몰랐다. 아들은 인터넷 몰에서는 싸다며 바로 실천에 옮기는 민첩함을 전에 없이 선보였다. 미처 말릴 틈도 없었다.

 

물건을 받아서 노래를 넣으며 좋아 히히거렸다. 내가 어느 회사 거냐 물었는데 어째 대답이 시원찮았다.

이름 없는 판매회사가 중국산 가져다 싸게 팔며 AS도 안 되는 거 아니냐 했다. 녀석은 요새 삼성이니 소니니 made in china 아닌 게 어디 있냐고 반문이다. 판매회사가 확실한 그거랑은 다르다 해도 아무 문제 없다며 싸게 산 것만 좋아한다.

 

드.디.어. 어제 액정이 깨졌단다. 다행히 노래는 나오지만 액정이 안 보이니 플레이 되는 노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다. 아들은 기가 죽어 다시 컴터에서 옥션을 검색하고 AS를 알아본다. 잘 안 될 거라고 나는 예감했다.

 

예전 같으면 아들에게 물건구입을 통째로 맡기지 않고 내가 더 꼼꼼히 알아보며 충분히 둘러본 후 결제하라고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들이 검색한 물건을 화면으로라도 한 번 봐 주지 않았다. 아들은 요즘 아이들보다 그런 면에서 어벙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작정하고 내버려 둔 것이다. 스스로 해 봐야 알지 싶었다. 물론 녀석도 엄마 이거 점 찍었는데 어떤지 봐 주세요 하지 않았다.  

 

이번에 처음으로 자신의 은행 입출금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아들은 은행에 가서 자신의 계좌에서 용돈을 뽑는 일도 처음 해 보았다. 기계에선 만 원 단위로 출금된다는 사실을 처음 안 녀석은 잔액 팔천 원은 어찌되느냐 걱정 했다. 그런 어리숙한 녀석이니 불확실한 물건을 보고 앞뒤 생각없이 덥썩 구입한 것이다.

 

다행히 판매회사와의 연락이 되어 수리를 약속받는다 해도 택배로 AS를 보내고 다시 돌려받고 하는 기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뻔한 일이다. 머잖아 피 같은 MP3 값을 날렸구나 깨달을 것이다. 어벙한 주제에 고집은 있어서 내가 주는 조언은 귀담아 듣지 않을 녀석이었다. 그러니 성급한 소비활동은 돈을 휴지로 만드는 행위라는 걸 알게 하려면 지가 당해 보아야 할 밖에.

 

아이 입장에서의 3,4만 원은 어른들 30만 원과도 맞먹는 비중일 텐데 내가 너무 무심했나 살짝 반성도 된다. 조금만 일찍 제동을 걸어 주었다면 불량품을 구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AS 절차에도 난 역시 아무 힘도 보태주지 않아야지 마음 먹는다. 시작이 자신이었다면 그 결과도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도중에 난처한 일이 생겼다고 남에게 슬쩍 밀쳐두고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행위는 절대 용납못하는 삶의 태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