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종합 잔소리 세트.

愛야 2007. 12. 11. 12:03

1.

 

마음이 산란하고 답답하다. 만일 누가 압박을 가하냐고 내게 물으신다면, 없다고 답할 수밖에. 하지만 세상이 그렇다. 아무 것도 매듭지어지는 것 없이 "어쩔 수 없어"라는 핑계에 기대어 하루가 간다.

 

테레비에서 보여주는 검고 끈적이는 바다는 지옥 같다. 파도를 타고 인간이 사는 마을로 밀려온다. 어찌 저것이 푸른 자연이랴. 한 뼘의 기름이라도 더 걷어내려는 바닷가 아낙의 거친 얼굴이 허탈하게 웃는다. 저 바다 아래는 또 얼마나 끔찍한가.

 

대선 후보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번갈아 해변으로 앞다투어 달려간다. 어촌민들의 표를 확실히 굳히기 위해 고무장화와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서 기름 진흙을 퍼낸다. 어촌민들의 힘든 미래에 보탬이 되겠노라고 시원시원히 말한다. 참 장하다. 재앙에 기댄 한 표. 지금 무슨 말인들 못하리. Beggars can't be choosers.

 

2.

누군가가 총을 뺏어 사라지고 어린 군인은 다치고 죽었다. 한 남자를 잡기 위해 전국에 온 경찰력이 깔렸다. 국토가 좁기에 천만다행이다. 곳곳에 검문이고 차는 정체된다. 몽타쥬를 전국민에게 보여준다. 전쟁이 별거냐.

 

3.

수능 점수를 발표하자 고3 학생의 가족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손바닥의 침 퉁겨서 될 일이면 좋겠다. 아니면 신발을 하늘 높이 던지든지. 부모의 경제력이나 아이의 실력보다 우선하는 것이 '운수'인 것 같다. 1점 차이로 경계선에서 등급이 밀리고 대학이 바뀌고 전공이 바뀌고 지역이 바뀌고 인생도 바뀐다.

 

수능점수를 비관한 아이들이 인생의 1차 관문에서 목숨을 놓아버린다. 고층 아파트를 다 허물어야 한다. 몸을 날리는 그 잠깐의 충동만 참으면 될, 꽃같이 어린 아이들이니까. 아이들은 죽고 싶었던 19살 수능시절을 웃으며 회상할 어른이 되어야 하기에. 세상에, 사랑도 아니고 배반도 아니고 시험 점수 때문에 죽어야 하다니, 그런 나라를 어른들이 정책으로 만들어 물려주고 있다니.

 

아들녀석은 수학이 여전히 꽝이고 이젠 영어마저 하락한다. 나쁜 넘. 그래도 나는 무서워 세게 나무라지 말아야지 결심한다. 결심만 한다. 어제도 뉴스 볼 땐 결심하고 밤엔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 저층 아파트라서 좀 위로가 된다.

 

4.

언니가 선물한 5개의 빤스가 다 작다. 돌려준다. 조이는 속옷은 멀미를 동반한다. 흥, 내 엉덩이를 뭘로 보고,...(잠깐 생각) 그런 앙증맞고 아담한 빤스가 언제부터 어림없어졌지?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