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자백은 못받았다.

愛야 2008. 7. 2. 09:34

     #월요일 밤

 

집에 들어오니 밤 9시경. 아들은 방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척하고 있다. 

기말고사 기간인데 저 정도 액션은 해야지.

근데 거실에 떡하니 놓여 있는 저 공은 뭔고.

지난 겨울 하도 잘 갖고 놀며 먼지를 날리기에 내가 어딘가 치웠건만 우찌 찾아내어 또 장난질 친 모양이다.

나는 아들 머리를 자애롭게 쓰다듬으며 "공 갖고 잘 놀았쪄, my boy?" 했더니 녀석도 "응." 하며 히히 웃는다.

그 공은 아가방에서 나온 폭신폭신한 축구공이다.

물론 녀석이 두어 살 무렵 산 것이다.

 

아까 전화로 녀석에게 뭐 먹고 잡은 거 없냐고 예의삼아 물었다.

녀석은 사양도 없이 떡볶이와 김밥튀김 사 오랜다.

쳇, 나으 실수.

떡볶이를 접시에 담고 상 차리는 동안 그새를 못참고 바로 거실로 나와 또 공을 차며 스펙터클하게 논다.

분명 직전까지 조렇게 놀다가 계단 올라오는 엄마의 발자국 소리에 방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왼발 슈팅 외치더니 주방으로 공이 날아와 상 위의 페트병을 쓰러뜨리며 우당탕거린다.

참고로, 집이 축구할 만큼 넓진 않고 키 짧은 내가 두 번 엎어지면 모든 집구석에 코 닿는다.

고로 주방이나 거실이나 거기서 거기다. 

"야아~ 하지 마라이~!"(옐로 카드 발부)

"알았으"

하더니 또 주방까지 공을 차 넣는다.

"야!! 공 안 치우나!"( 레드 카드)

떡볶이 먹더니 시험기간엔 일찍 자 줘야 한다고 11시에 불 탁 끈다.

고등학교 2학년 맞...나?

 

   #이튿날 화요일 아침.

크억!

꼭두새벽부터 눈 튀어나올 뻔했다.

베란다로 나가는 방충망 한 모서리가 L자로 완전 북 뜯어져 있었다!

어젠 밤이라 베란다 나갈 일이 없어 미처 보질 못했는데 이거 대형사고다.

어쩐지 녀석이 어제 방충망 위 유리문까지 닫고 공을 차서 속으로 어쭈구리 웬일로 조심? 싶었다.

아침밥 먹고 있는 녀석에게 다 들리게 오머오머 호들갑 떤 후

"너 어제 방충망 쪽으로 공 찼지? 방충망 다 뜯겼잖아."

근데 요 녀석 화를 벌컥 내며 저~얼대 아니란다.

"유리문 닫고 공 찬 것도 그래서 그런 거 아냐?"

정황 증거를 예리하게 들이대었다.

녀석도 더욱 화를 벌컥 내며 아니라니까!! 자백을 완강히 거부한다.

 

하...욘석 봐라.

이 집에 지 아니면 난데, 그럼 내가 심심해서 방충망을 저렇게 다 줘뜯었겠냐?

잡아뗀다고 묻힐 일이 아닌데 녀석은 꿋꿋하게 오리발이다.

아침 등교시간이라 내가 그쯤해서 입 다물었다.

추궁이 가져올 파장이 미리 귀찮아서다.

머리좋은 내가 참아야지, 가끔 너무 뻔한 일을 끝까지 우기는 녀석을 보면 아이큐가 심히 궁금해진다.

그랴, 방충망이 지 스스로 바람난 봉숭아처럼 몸 터뜨렸나 보다.

아님 내가 몽유병 도져서 밤에 잠 안자고 공 찼던지.

쩝, 외로워 방바닥이나 벼루박 긁는다는 소문은 간간 들리지만 방충망 뜯는다는 소린 최신 신상품이네.

 

         

18살 아들이 16년째 가지고 놀고 있는 축구공.                    아래에서 위까지 부욱...모기들아 AB형은 맛도 없단다, ㅠ

가끔 안고 자기도 한다.              

 

이이상 학실한 증거가 어디 있냐고.

문제는 자백이 없었다는 거...

방충망 어디서 팔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