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인도와 자갈치 사이

愛야 2008. 7. 6. 05:15
  
#1

여행은 그래, 훌쩍 가는 것이다. 목적지가 인도라면 더욱 그렇다. 시인인 조카딸이 인도로 여행을 떠났단다.

 

여자들의 인도 여행이 자주 들려온다. 내가 전해들은 인도 가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이었다. 망상깨나 하는 여자들은 책무처럼 인도를 갈망한다. 관념과 체념, 인연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나면 나도 인도로 가고 싶을까. 여전히 나는 현실을 버리지 못하는 중인데, 인도의 이야기를 수십 년째 듣고만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인도를 권하는 남자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또 누가 아나. 함께 인도로 가지 않겠느냐는 남정네가 내 맘에 쏙 들기까지 하다면, 납작한 모카신을 신고 펄럭대며 따라 나설지.

 

하지만 확신하건대 남자들은 영원히 인도를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도는 여행이 아니라 성지순례 같으므로. 남자들은 육신의 고행이나 인내 끝에 도달하는 영혼의 행복을 믿지 않는다. 쾌락이 배제된 행복을 믿지 않는다면 인도는 적합하지 않은 땅이다. 깊고 오랜 생각을 성가셔 하지 않는 남자는 Siddharta가 마지막이었다.

 

인도라. 인도의 짧은 여행길에서 열살쯤  어린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한 여자를 알고 있다. 어느 여름 뜬금없이 인도에서 만나진 한국 여자와 한국 남자. 그들은 돌아와 아름다운 성당에서 결혼하였고 아들을 낳았으며 지금까지 헤어지지 않고 살고 있다. 몇 가지 관점에서 그녀의 결혼생활을 돌이켜 보건대 그들의 인연은 피하지 못할 引力이었다. 하긴 누구의 인연인들 그렇지 않은가.

 

각설하고, 나는 지금 김치전 반죽을 마련하는 중일 뿐이다. 손은 김치와 호박과 양파를 썰고 마음으로는 세계를 주물럭거린다. 흐흐.

 

얼마전 단골 김치집에서 두 종류 배추김치를 샀었다. 갓 담근 김치와 김치찌개용 신김치. 김치찌개용 김치는 집에 와 맛을 보니 시어도 너무 시었다. 아줌마에게 배신당한 것 같았다. 찌개용 김치를 원했기로서니 시어터져 먹기 힘들 정도의 김치를 주었다. 딱 한번 찌개 끓여 나 혼자 먹어야 했다.

 

남은 신김치를 버릴 수 없어 부침개로 변신시킨다. 반죽 속 계란과 야채가 중화제 역할을 해주기 기대했다. 한 장 부쳐 먹어보니 신맛이 약해져 먹을 만하다. 다행이다.

 

 

       

     

#2

오후에 약속이 하나 연기되어 시간이 생겼다. 일찍 알았다면 외출준비도 필요없었는데 이미 끝낸 샤워와 화장이 억울해서 혼자 남포동에 간다.

 

오랜만에 시장거리를 기웃거린다. 인도 부럽지 않게 충분히 낯설고 복잡하고 좋다. 여전히 젊은이와 짝퉁과 먹거리 노점상이 넘친다. 기분이 젊어진다. 옷을 몸에 대어보고 건방진 어투로 값을 묻는다. 그래야 얕보이지 않는다. 이런 곳쯤이야 내 익히 안다는 닳아빠진 포스를 온몸으로 뿜어야 당하지 않는다. 그러니 외출에서 돌아오면 피곤하다. 물론 옷은 사지 않았다. 마음은 젊으나 얼굴은 그런 유행스런 옷을 사면 안된다고 일깨워 주었다. 대신 길 건너 자갈치에서 고등어와 오징어를 무겁게 샀다.

 

늦기 전에 어디든 가야 한다. 인도나 남포동이나 내가 헤매이고 싶은 어디. 김치전과 자갈치의 고등어 오징어 사이에서 맴도는 내 발을 멈추게 할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