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파마하다.

愛야 2009. 1. 10. 21:52

 

 

1.

남들도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이와 머리카락 개체수가 나날이 반비례를 하였다. 자라는 속도가 느려짐도 확연히 느끼겠다. 옛날 엄마가, 너는 밥 먹고 손톱발톱 머리카락만 기르느냐고 하던 말은 전설이 되었다. 착 들러붙는 생머리가 초라해 보인다. 밖에 나갈 때는 머리 부풀리느라 없는 손재주를 부려야 한다. 하지만 바람이라도 탱탱 부는 날 윈도우를 힐끔 본다면, 기껏 위장한 부풀림은 어디로 갔는지 초췌한 아지매만 종종걸음치고 있을 뿐이었다. 이래서 할머니들이 다 똑같은 뽀글이 빠마를 하고 있나 보다.

 

고민 끝에 파마를 하였다. 3년만이었다. 3년 전, 줘뜯어놓은 듯한 야시시한 파마를 하고 처음 얼마간은 몹시 흡족하였다. 하지만 곧 사자대가리 같아졌다. 못 견딘 나는 요래 자르고 저래 잘라 아까운 파마머리를 생머리로 돌려놨었다. 그 쓴 경험으로, 생머리가 지겨워 파마를 해도 얼마 안 가 다 잘라버릴 나를 미리 알기에 망설였던 것이다. 파마값 아까븐께로.

 

며칠 동안 주변인 설문조사를 한다. 나, 파마하까? 안타깝게도 하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들: 지금이 개안타, 마! 한다꼬 나아질 거 있겠나.(이눔이....)

동료1 : 파마하기에는 좀 짧지 않아요? 뽀글하면 달랑 올라붙을 텐데... 

동료2: 지금 보기 좋은데요, 자연스럽고. 

30년짜리 친구 : 니 지금 헤어스탈 좋은데? 젊어 보이고. 50대에 뭔가가 있어 보이는 분우구잖아, 머할라꼬 할래?

 

그러나 내가 해야지 싶으면 하고야 마는 게 또 파마다.( 그럴거면서 묻기는....). 토요일 느슨한 시간을 틈타 나는 동네 미용실 문을 결국 드르륵 열었다. 풀린 듯한 파마를 해 달라고 하니 미용실 아줌마가 의아해 했다. 뽀글뽀글 싫어요, 그냥 머리 힘만 좀 있게 해 줘요, 했다. 비경제적 파마를 마치고 집에 오니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그기 파마한 거가? 그 정도야 좀 격하게 자고 일어나면 되는 거 아이가? 으음...멋을 모르는 무식한 넘. 근데 얼만큼, 어떻게 격하게 자야 생머리가 파마될 수 있나?

 

2.

나의 버추얼 워터( Virtual water, 가상의 물. 농공산품이 생산, 유통, 소비되기까지 물의 총량)는 얼마나 될까. 나는 물론 농공산품이 아니지만 인간의 삶도 간단하게 보면 소고기나 우유나 A4용지나 같은 경로를 밟는다. 어떤 존재든지 생성과 소비와 소멸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내 존재는 지금 자식양육, 돈벌이, 부모간호, 등으로 소비되고 있다. 점잖게 말하면 의무를 다하며 보람찬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엄청난 물부족 현상을 예고하는 지구환경수비대的 의도나, 물의 힘을 염두에 둔 경제적 이론인지는 나중에 공부하기로 한다. 한 잔에 140L의 버추얼 워터가 소비된다는 커피를 나는 하루에 8잔 정도를 마시며 4천ℓ의 물이 필요한 면티셔츠는 서랍장에 쟁여있다. 더구나 일렁이는 슬픔 따위를 굳이 물질로 나타내자면 그건 분명 물일 터이다. 나의 인생을 통틀어 얼마만큼의 물이 나를 이루었을까. 나는 문득 궁금하다. 내 버추얼 워터, 짜도 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메마름, 그러나 물이 줄줄 흐르는 이 느낌.

 

버스 차창에 기대어 흔들리며 밤거리를 보면 알 수 없는 슬픔이 지나간다. 7시라는 시각도 슬프고 난시의 눈에 겹쳐보이는 불빛도 슬프다. 이 나이에 내보이기엔 같잖은 감상이 분명하다. 내보일 수 없으면 속으로 꿀꺼덕 삼켜야 한다. 삼키는 것이라고 다 소화되어 똥오줌으로 나오진 않는다. 나오면 좋겠다. 어제의 상심이 오늘의 똥이 되고(아, 변비생각을 못했다) 아까의 슬픔이 오줌되어 나와버리면 참 좋겠다. 나와버려야 할 것일수록 차곡차곡 저장이 된다. 점점 저수지가 되어가는 몸뚱아리. 

 

 

 

 

 

  Daiqing Tana, Passed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