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이 보다가
청안애어 님 방에 또 간다.
지훈이의 동그랗고 몽실한 얼굴을 보러 간다.
청안애어 님은 두 아들로 부족하여 얼마 전 세 번째 아들 지훈이를 낳으셨다.
마흔 넘은 늦둥이다.
엄마의 임신 소식에 눈물로 감사함을 전했다는 두 형아들의 이야기는 따스하고도 웃겼다.
지훈이는 잘 자고 잘 싸고 잘 논다.
터울이 많은 형아들은 지훈이 젖냄새 주변을 맴돌며 책도 읽어주고 기저귀도 갈고 목욕도 도와 준다.
아이를 제일 잘 봐주는 사람은 아이들이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도 아이들이다.
그들은 서로 통한다.
지훈이를 보자니 내 아들의 고만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득하고 그립다.
앨범을 찾아 볕 드는 거실에서 지나간 내 아가야를 뒤적인다.
<1991년 헌이> 옆에는 필수품 공갈 젖꼭지가 있다. <2009년 청안애어 님의 지훈이> 차렷하고 좋아 중는다.
헌이는 병치레하느라 재롱부릴 겨를도 없었다.
순차적 행동발달도 늦되고 뒤죽박죽 엉망이어서, 병원에 가 보라고 누군가가 권했을 정도다.
기고 앉으려면 뒤집기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 녀석은 도통 뒤집을 생각을 안했다.
즉, 뒤집기ㅡ기기ㅡ앉기ㅡ서기ㅡ걷기 이 순서를 내 아가는 도통 무시했다.
웃기는 것은 내가 앉혀 주면 멀쩡히 잘 앉아 있었다.
그것은 앉는 허리 힘과 균형감이 있다는 말이다.
중심 잡고 앉는 요령과 힘이 있는데 왜 1단계 뒤집기를 안하는지 참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눈을 뜨니 허니가 뒤집어 엎드려서 나를 보며 빙긋이 웃는 것이었다.
나보다 먼저 깨서는 역사적 과업을 이룬 후 뽐내고 있었다.
우와, 그때의 놀라움이라니, 몸부림 치다가 드디어 뒤집는 방법을 터득한 모양이었다, 다른 애기들 기어다닐 때. ㅎㅎㅎ
앉기부터 하고 나중에 뒤집는 애가 어디 있냐고요.
순서 무시하고 개성있게 자라더니 흐이구 15개월 넘어서 홀로 걸었다.
양파 한 알만으로 잘 놀았네. 유치원 학예회로 포청천을 했는데 허니는 폐렴입원으로 연습 꽝.
지구도 요처럼 돈다는 사실을 실험중이다. 퇴원후 바로 공연, 순서 몰라 한 템포씩 늦는 바람에 우꼈다.
피골상접하였던 유년시절.
유치원 견학 가서 짝지와 굳게 잡았던 손. 불과 19년 사이 이런 총각으로 변신, 주민등록증 발급받았슴다.
머쓱해 하는 표정 봐라. ㅎㅎ
그 시절 나의 아기는 어디로?
저 이뿐 아기와 엄마에게 버럭버럭 대드는 녀석은 분명 다른 존재이다.
나에겐 1회로 끝나버린 그 비릿하고 달콤한 향기를 청안애어 님 늦둥이에게서 다시 만난다.
지훈이는 안 크고 그대로 있으면 딱 좋겠는데 애어 님이 너무 힘드실까?
지훈이의 울 듯한 얼굴을 보고싶으시면 욜로. http://blog.daum.net/ylovej3/13744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