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숙제

愛야 2009. 8. 12. 22:36

 

 


#1




걷고 또 걷는다. 가벼운 반바지 차림을 하고 묵직한 랜드로바를 신었다. 걸음이 휘청이지 않도록 무게를 잡을 곳은 발뿐이다.

땅과 붙은 나의 유일한 신체여, 부디 나를 굳세게 지켜다오.   

 

심란한 머리를 이고 걷는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오른발 디딤과 왼발의 떨어짐 사이, 그 찰라를 경계한다. 

4862 가지의 감정이 끼어들기에 1초면 충분하니까. 잡념이란 원래 잡스러워서 쓸쓸한 헛점을 곧잘 공략한다.

잡념이 밀가루 반죽처럼 몸을 부풀리기 시작하면 걸음은 속도를 잊을 것이다. 소용돌이를 치는 마음은 제자리 걸음이리.

소용돌이의 속성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전방 주시. 오로지 오래 기다리지 않을 효율적인 건널목 위치와 주변 경치와 시간과 내 맥박과 촉촉한 땀에 신경 쓸 것.

바라건대 모두 잊을 것.

 

#2.

 

 

 

걷다 보니 S아파트 뒤편 호안도로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걷기 전용도로와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다가 시원하다. 저녁에 오면 더 좋겠다.

월. 수. 금요일 저녁 주 3회 강사가 와서 주민 건강걷기를 지도해 준단다.

 

 

 

 

 

희한하게 선선한 여름이지만 메뚜기도 한철이라 모터보트, 바나나 보트 신난다. 저런 속도로 매달려 앞사람 등짝만 보며 달리면

겁나게 재미있을라나? 구명조끼 백 개를 입어도 나는 못할 놀이다.

 

 

 

 

노란색 윈드서핑. 강풍에 돛 단 듯이 쭉쭉 난다. 그 날 바람이 좀 심했다.

 

 

 

잘 나가시다가  

 

 

 

고마 빠졌다....(아저씨 미안합니다, 몰래 웃어서..)

 

 

 

죽을동 살동 보드 위로 올라섰다. 다시 날더니 다시 빠졌다. 1인 윈드서핑은 고독했다.

 

 

#3

다시 돌아 걷는다. 왔던 길을 숙제처럼 차곡차곡 걷는다. 4862 가지를 읊어보라고? 다들 아시면서.

연민, 사랑, 후회, 분노, 고독, 이기심, 추억, 그리움, 실망, 죄송, 희망, 웃음, 냉정, 새끼사랑, 계산기, 그 와중의 삶의 연속성.

정말 모두들 잘 아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