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심의 그 지하도에는 단골 걸인이 몇 있다. 번화가가 늘 그렇듯 그 지하상가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시간에 쫓겨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는 오가는 사람들이 방해요소가 되는 북새통의 계단에 그들은 한 귀퉁이를 무심히 차지하고 있었다.
한 여자걸인은 낫지 않는 발을 재산으로 가졌다. 가장 오래 보아왔던 걸인이었다. 그녀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오렌지색 소독약을 딱지에 바르곤 했다. 헝겊에 둘둘 쌓인 다리는 부어 보였으나 절단되진 않았다.
이제 우리는 좀체 속지 않는다. 그녀의 통증에 더 이상 동조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번 겨울 그 지하도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발이 통하는 낯선 장소로 터전을 옮겼는지 모른다.
아이를 업고 엎드린 또 다른 여자걸인은 가끔 그 아이를 앞으로 돌려 안곤 했다. 의외로 아이는 갓난이가 아니었고 볼이 통통하기까지 했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경험한 교육이 구걸일 것이다.
나는 그 여자걸인이 싫었다. 방송의 고발 프로그램대로라면 자신의 자식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구걸의 소품으로 아이를 안았을 뿐이다. 자라는 속도에 맞추어 아이를 바꾸어야 할까. 나는 그녀에게 동전 한 닢 떨어뜨리지 않았다. 점점 나는 그들에게 돈을 주는 일이 드물어져 갔다
2.
며칠 전, 나는 코트자락을 펄럭대며 지하도 계단을 바삐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에 한 노인이 걸터앉아 있었다. 보통 걸인의 자세는 사람들의 발쪽을 향하기 때문에 벽을 등지게 되는데, 노인은 내려가는 방향으로 계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벽 쪽으로 바싹 붙어 앉아 가쁜 숨을 잠시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가 하얀 그는 더럽게 보이진 않았으며 걸인의 수준으로 본다면 얼굴빛도 맑았다. 몹시 말랐지만 젊은 시절엔 괜찮았을 체격과 용모였다. 그의 곁에는 걸인의 신분증처럼 모자가 놓여 있었다.
그는 팥 시루떡을 먹는 중이었다. 엉뚱하게 느껴졌다. 넓적한 시루떡의 비닐 포장지를 조금 벗겨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날은 정말 혹독하게 추운 날이었다. 노인은 덜덜 떨며 먹고 있었다. 나는 모자 속을 보았다. 300원이 담겨져 있었다. 자신에게 머문 시선을 느꼈는지 그는 덜덜덜덜 더 떨어보였다.
내 지갑에는 그때 하필 천 원짜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만원을 던지기에는 나의 지갑도 종잇장처럼 얄팍하다. 물건을 사주는 것이 아니고 단순한 동냥으로는 천 원 이상을 주지 않는 게 나 나름의 기준이다. 쯥, 어쩔 수 없구나. 지나쳐 내려가다가 동전 포켓을 보니 오백 원짜리가 두 개 있었다. 나는 다시 끙 되짚어 올라가 그의 모자 속에 오백 원짜리 둘을 내려놓았다. 천 원은 천 원이다. 그는 묵묵히 시루떡만 먹었다. 저녁 식사인지 몰랐다.
계단을 다 내려와 뒤를 힐끗 올려다 돌아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모자 속을 넌지시 살피고 있었다. 다시 온 그 행인이 얼마를 두었는지 헤아리는 것이다. 30여분 후, 나는 용무를 마치고 다시 지하도 계단을 올라가며 노인 곁을 스쳤다. 모자 속을 보았다. 모자 속엔 여전히 300원뿐이었다. 300원 외 모인 돈은 따로 보관했다는 것이다.
3.
어제 나는 다시 그 거리의 버스 정류소에 서 있었다. 한 남자가 내 곁의 아주머니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몇 백 원만 주세요. 아주머니는 말없이 몸을 옆으로 피했다. 그는 걸인임이 역력했지만 너무 태연했고 뚱뚱하고 아주 젊었다.
그가 이번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몇 백 원만 주세요. 나는, 없습니다, 라고 말한 후 속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나보다 더 젊고 덩치 좋고 살도 많은 너에게 왜 내가 몇 백 원을 줘야 하냐. 그리고 뭐? 몇 백 원<만>이라고? 그는 누구에게서도 돈을 얻지 못하고 정류소를 떠났다.
며칠 전 그 노인이 떠올랐다. 그는 고수였다. 그는 모자 속에 300원 이상을 놓는 적이 없을 것이다. 만약 텅 비어 있다면 행인들은 아무 죄책감 없이 그냥 갈 것이다. 남들도 그러는데 난들 뭐, 책임의 분산이라는 것 말이다. 만약 많은 동전이 놓여 있다면 행인들은 또 그냥 갈 것이다. 저렇게 많으니 나는 안 줘도 되겠네, 오늘 할아버지 수입 좋은걸?
아주 없지는 않으나 살짝 부족하게, 조금만 더 보태주고 싶게 만드는 그 경계란 얼마나 섬세한가. 노인은 중용의 미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란 없다는 걸 알았다.
노인은 한 마디의 말이나 구걸의 동작도 없었다. 내가 아픈 무릎을 감수하며 계단을 다시 올라가게 만들었던 그는 다만 덜덜 떠는 연기력과 목메이는 팥 시루떡과 300원의 효과를 잘 활용한 고수가 아니던가. 버스 정류소의 젊은 걸인은 노인에게 한 수 배워야 할 터이다. 우선 구걸의 대사부터.
4.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문제는 나란 사람이다. 걸인에게 은연중 어떤 법칙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Model beggar라니. 이를 테면, 도저히 구걸 외엔 아무 일도 못하겠다는 타당함이 있을 것, 구걸의 노력이 보일 것, 사기성 연출이나 뻔뻔함이 없을 것, 생존을 위한 행위일 것,.. 참 불필요한 잣대가 아닌가.
걸인의 모양새나 태도를 선별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걸인에게 돈을 준다면 그가 걸인이라는 것 이외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내 마음의 그물코를 통과하여야 준다면 그건 이미 댓가다. 크든 작든 내 손을 떠난 돈의 행방과 용처에 대해 나의 신경도 함께 꺼야 한다. 내가 구제를 할 입장이 아니라면 그.냥. 줄 것.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오늘도 봉투를 내미는 걸인을 지하철에서 거절하였다. 거절의 변명은, 매일 만나는 사람인데 그때마다 봉투를 사 줄 수 없기 때문에ㅡ이다. 아아, 표리부동의 손쉬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