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흰 그릇

愛야 2010. 4. 18. 14:57

 

청소가 청소를 부르고 설거지가 설거지를 부르는 법.

싱크대 아래 ㄱ자로 꺾인 구석까지 손을 뻗어 그릇 다 끄집어 낸다.

아직 뽁뽁이로 싸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건 뭔가 싶어 일일이 풀어보곤 아유, 이게 여기 있었네 혹은 아 참 이런 그릇도 있었지 한다.

사고 싶어 샀을 텐데 유용하게 쓰지도 않고, 순간 만족에 뜻을 둔다.

그리고 잊는다.

쇼핑 중독자나 물욕이 넘치는 사람들의 전형적 행태다.

내가 그렇다.

 

 

    

 

  

 

흰 그릇.

울엄마 표현으로는 허연 그릇.

심심한 허연 그릇만 사느냐고 알록달록한 이쁜 것을 사라고 하셨다.

<흰 그릇> 하면 정갈한 맛이라도 있지 <허연 그릇>이라니, 정말 허접하게 들렸다.

어찌 저 사진의 그릇 뿐이랴.

밥그릇, 국그릇, 찬기, 양념 종지까지 흰 그릇이다.

서양식기도 아니고 최신의 것도 아닌지라 디자인도 맨 그저 그렇다.

지겹다.

도자기 그릇이 무거워 요즘엔 깨지지 않기로 유명한 가벼운 그릇을 주로 쓴다.

깨지지 않는 것은 또 깨지지 않아서

또 지겹다. 

 

 

 

이토록 큰 유리접시를 어디다 쓰려고 샀는지, 아님 받은 것인지도 기억이 안 난다.

확실한 것은 한번도 음식을 담아 내지 않았다는 사실.

지난 번 버리려고 내 놓으려는 순간 수반으로 쓰면 좋겠다는 참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물을 찰랑 담고 연꽃 두 송이만으론 심심하야 청개구락지도 한 마리 올렸다.

이 집에 나 이외 유일한 동물, 色스러워 살째기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