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태풍전야
愛야
2010. 9. 6. 11:38
바람 한 점 없이 너무나 덥습니다.
태풍이 오느라고 그렇다는데, 저녁 먹고 답답증이 나 산책을 나오니 보슬비가 살살 뿌립니다.
다시 우산을 가지러 갈 만큼 다리힘이 좋지 못합니다.
쳇, 그렇게 안 오던 비가 하필 내 산책길에 쏟아지겠냐, 하며 그냥 갑니다.
바닷가까지 걷기로 하였습니다.
동네 대학의 캠퍼스로 들어갑니다.
그 대학 울타리의 개구멍이 지름길입니다.
연못가에 우산을 받치고 두 여자애가 이바구하고 있습니다.
궁뎅이 젖지 않을까...비 올 때 벤치에 의연히 앉아있는 사람을 보며 늘 들던 의문입니다.
오우, 마침 바다에서 안개가 마구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지점을 돌아서자 수평선에서 해안을 침략하는 안개가 보였습니다.
긴 다리가 허공에서 끊어진 듯, 불빛이 실종되었습니다.
뒤편의 교각은 서서히 안개에게 먹히고 있습니다.
거대하고 찬란한 콘크리트 건물이 안개에게 말입니다.
드디어 교각 하나는 내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꼬리를 문 불빛과 네온의 화려함은 안개속에서도 정체를 감출 수 없어야 하건만
흐르고 흩어지는 부드러운 안개, 참으로 힘이 셉니다.
그 신비함으로, 그 머물지 않음으로.
우산을 받치고 안개를 맞으며 여전히 사람들은 걷습니다.
오른편 바다쪽에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빗방울이 굵어져 나는 끝까지 가지 않고 돌아섭니다.
한참을 오다 뒤를 돌아보니 집 나갔던 교각이 어느새 다시 돌아와 천연스레 서 있습니다.
안개는 이제 다른 곳으로 사냥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