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병
"먹고 싶은 것 말해라, 해 둘게."
"수박!"
아들은 이 엄마의 정기를 이어받아 수박귀신이다.
수박이 올해 엄청 비싸다고 뉘우스에도 나왔....쩝.
난 반찬을 말하라는 뜻이었는데 녀석은 과일이 고팠나 보다.
포상휴가를 온다고 했다.
달랑 2박 3일.
오는 데 하루 가는 데 하루인데 뭐하러 오냐고 심드렁하게 말했더니
"그래도~~." 한다.
그래 맞다.
단 한 시간이라도, 그 한 시간을 차만 타다가 들어간다 해도 일단 뛰어나오고 싶을 거이다.
수박을 향기롭게 쪼개 썰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선 개코 녀석의 첫마디가 아, 수박 냄새난다였다.
친구들 모두 나라의 아들들이라 만날 사람도 없었다.
샤워 후 바로 거실의 컴퓨터 앞에 달라붙어 새벽 1시 넘어도 일어설 줄 모른다.
야행성 이 엄마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야, 너 취침시간 아니냐, 이 순 무늬만 군바리야.
2시경 잤으니 아침 기상도 당연히 늦다.
평소처럼 나 홀로 아침밥을 먹고 나니 10시쯤 실무시 기어 나온다.
야, 너 기상나팔 없어도 벌떡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니냐, 이 순 무늬만 군바리야.
어째 민가로 나오는 순간 저리 원상복귀인지 참.
저녁에 영화의 전당까지 가서 맨 인 블랙3를 보았다.
맨 인 블랙을 보고 싶다기에, 영화의 전당에서 보여주고 싶어 내가 가자고 했다.
요란벅쩍지근한 영화를 보고 나오니 현란한 LED 조명이 흐르고, 녀석은 강원도 촌넘답게 우와 했다.
우리는 전기료를 걱정하며 치킨과 맥주를 사 들고 돌아왔다.
ㅡ얼굴이 오동통해진 녀석.
이튿날은 아침 먹고 곧 올라가야 했다.
11시 집에서 떠나 KTX 서울역ㅡ동서울ㅡ홍천까지 종일 걸려 잘 귀대했다고 저녁에 전화가 왔다.
번개처럼 다녀가도 절대로 섭섭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달에 정기휴가를 열흘간이나 흑흑 또 온다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