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흘리는
갑자기 밤 공기가 쌀쌀해진 날이었다.
따뜻한 지하철에 있다가 지상으로 올라오자 싸늘한 냉기에 재채기가 연발로 터졌다.
소통의 통쾌함, 그 쾌감이야말로 재채기의 진정한 미덕일 것이다.
곧이어 코가 맹맹해졌다.
며칠 무리를 하였더니 컨디션이 아슬아슬하던 차였다.
재채기를 션하게 한 후, 돈을 탈취하기 위해 지하철역 바로 옆의 은행으로 들어갔다.
현금 인출기 앞에서 화면을 향해 고개를 떨구는 바로 그 순간, 일점 무엇인가가 전광석화처럼 내려꽂혔다.
그것은 내 파란 점퍼 앞섶에 떨어져 스며들었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그것이 무엇인지, 과연 떨어지기나 하였는지 의심스러웠다.
잠시 후 그러나 나는 눈치채었다.
콧물!
현금 인출기 너머 카메라는 보았을까.
말간 콧물이 눈물처럼 뚝 수직낙하 하는 장면을.
이 전혀 예기치 못한 추접시런 상황에 나는 당황하며 돈을 찾은 후 은행을 나와 종종 집으로 걸었다.
가는 도중 서너 번 코를 휴지로 닦아야 했다.
아니, 어찌 이토록 갑자기 콧물이 줄줄이 흘러내린단 말이가, 이래도 되는 기가.
골목을 돌아 가로등을 막 벗어나는 순간 또다시 콧물은 말릴 새도 없이 맑게 뚝 떨어졌다.
헉, 나는 비겁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나 젊은이들로 바글대는 길이라 아무도 나에게 눈길조차 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당당하게 코를 흘리며 가지 않는가.
남을 해친 것도 아니고 내 콧물 내가 흘렸음에, 것도 내 옷에, 뭐 남 눈을 살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남몰래 흘렸음을 다행이라 안도하는 소심함, 이것은 습관이다.
나만 아는 나의 창피함이란 대체 무언가, 나는 아직 고상하고 싶나?
그날 밤, 휴지통을 옆에 두고 밤새 풀어야 했다.
나름의 처방은, 휴지를 말아 코피도 아닌데 콧구멍을 막아두었다는 것.
그것이 올 F/W 첫 감기의 시작이었다.
다 나았냐고?
콧물은 뗐고 이젠 다른 컨셉으로, 쿨럭쿨럭.
덧붙임: 콧물 뗐다는 말 취소합니다. 오늘 아침 원위치, 으흑. 입방정 떤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