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미안.....

愛야 2012. 11. 22. 19:38

 

 

 

모처럼 저녁을 일찍 먹고 산책을 나섰다.

집 근처 대학의 교정으로 들어선다.

요즘은 6시만 되어도 깊은 밤처럼 캄캄하다.

가로등이 밝은 만큼 그 다음 만나는 어둠은 더욱 짙다.

교정 내 로타리에서 둥근 나무들을 끼고 도는 순간,

 

훔마야, 저게 머시다냐.

허연 옷이 깜깜한 허공에 둥둥 떠서 내 쪽으로 온다!

움찔.

내 눈과 입이 분명 벌어졌을 것이다.

허연 점퍼가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그제서야 점퍼 아래 긴 다리도 보았다.

 

아아, 또 너로구나.

나는 안 놀란 척 표정을 얼른 수습했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그는 밤처럼 깜깜하다.

블랙맨들도 그 색이 회색, 머드색, 초코렛색, 덜갈색, 진갈색 제각각이지만 이 청년은 너무 black하다.

그가 어둠 속에서 걸어오면 나는 그를 눈치챌 재간이 없다.

내 눈엔 그는 없고 옷만 보였다.

 

나의 놀란 표정을 보았니?

그건 인종차별 탓이 아니란다.

난 살갗 색에 따른 편견 따윈 없어.

공중부양하여 혼자 걸어온 옷때문에 반사적으로 놀랐을 뿐이야.

슬퍼하지 말고 이해해 주려마.

우리나라엔 <전설의 고향>이란 막강한 드라마가 있었거든.

그 후유증쯤으로 알아줘.

 

스치며 흘낏 그를 보았다.

밤을 배경으로 그는 없는 듯했지만 거기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정확하게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유치뽕하게도 나는 궁금하다.

아프리카 들판에선 밤에 서로를 어떻게 알아볼까?

거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