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이 보니 교무실 실세가 따로 있능 기라. 자유당 시절이라 사상 파벌도 많았는데 이거는 그런 것도 상관없이 동창회를 등에 업고 무서운 기 없는 넘이라. 교장도 함부로 못하는 그런 넘이라. 그래, 제일 대가리 넘만 휘어잡으면 아무도 나를 넘보지 못할 끼다 싶었지. 나는 준비를 했어. 뭔 준빈고 하니 몸을 단련했다 이 말이다. 집안 아저씨 중에 복싱 도장을 하는 분이 있었지. 내가 딱 찾아가서 복싱을 갈쳐 주이소 했지. 객지서 혼자 버티는 조카가 안쓰러웠는지 아저씨가 날 받아주더라. 나는 복싱도 하고 태권도도 하고 열심이였지. 어느 날 아저씨가 나보고 조용히 묻는 기라. 니, 권투선수 할 거는 아이제? 예. 니한테 필요한 거는 호신이가? 예. 권투하고 호신은 다르제, 호신은 곧 쌈이 되고 쌈은 모든 운동의 집합체인 기라, 알제? 예. 그라모 내 말을 멩심해라. 예, 내가 대답했지."
해가 눕고 있었다. 곧 순식간에 방안은 어두워질 것인데, 노인은 멀리 자유당 시절까지 가서 싸움의 답을 찾고 있었다. 앞에 앉은 청년은 다리를 번갈아 접어가며 이야기를 공손히 들으려고 노력하였다.
"쌈에서 이길라믄 첫째, 잔인해야 한다. 내가 잔인하지 않으면 상대가 잔인해진다. 그라믄 내가 당하는 벱이다. 둘째, 지든 이기든 끝까지 싸워야 한다. 어설푸게 건디리든지 어중간하게 싸우다가 그만두면 내가 죽는다. 지더라도 진절머리나게 상대를 물고 늘어짐서 져야 다시는 내를 안 건디린다. 하아, 정말 명언이지. 아저씨는 내한테 필요한 기 뭔지 정확히 알고 기셨던 기라. 그러던 어느 날, 그넘하고 붙을 날이 드디어 오게 되었제."
청년은 조금씩 몰입되는 눈치였다. 그 낌새를 눈치 못 챌 노인이 아니었다. 그는 이야기하기를 천성적으로 좋아했다.
"저녁이었는데, 일이 있어 학교에 들렀더니 교무실에서 이넘이 학생 몇 명 데불고 시험지 채점을 하고 있는 기라. 내가 들어가니 말을 대뜸 탁 놓으며, 어이 촌넘! 이 밤에 학교는 머 할라꼬 왔노? 하는 거라. 내는 아무 내색 안 하고 웃으며 예에, 지나는 길에 들러 봤습니더 하고 내 책상 쪽으로 걸어갔지. 야, 이 촌넘이, 니가 머 할 일이 있어서 건방시럽게, 고마 가라 이카는 기라. 학생들도 보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조금 정색을 하며,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했지. 그랬더니 이넘이 벌떡 일나서 내 쪽으로 화를 내며 걸어오더구만. 나는 내 자리에 딱 선 채로 그넘을 쳐다봤지. 바로 오늘이구나 싶었지. 그넘이 가까이 오더니 손을 들어 나를 후려치는 거라. 내가 상체를 뒤로 슬쩍 피했지. 복싱 용어로 이걸 헤드 웍이라 칸다. 그만두이소, 안 그라믄 후회하실 겁니더 경고했어. 학생들이 이 흥미진진한 싸움을 눈이 빠지라 지켜보는데 이넘도 지 체면이 있지 그만두겠나. 다시 주먹을 쥐고 덤비는 순간에 내가 턱을 한 방 가격한 후 발차기로 저만치 날려 버렸지. 그넘, 뻗었지!"
급기야 추억은 영화처럼 펼쳐지는 중이었다. 허리가 아파 병원에 다녀왔다던 노인은 의자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얼굴은 빛이 났고 입가에는 특유의 비스듬한 미소가 드러났다. 싸움의 장면은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청년의 흥미마저 끌었다. 모든 수컷의 생리일 것이다.
"다음날 등교하는데 아아들이 우~ 내 옆으로 들러 붙는 기라. 선생님 선생님 해 가면서. 와, 무슨 볼일 있나? 아니예, 그냥 샘이 좋아서예 이러면서 실실 웃어. 허허, 온 학교 소문이 다 난 기라. 그넘은 일주일 학교 안 나오더마는 사표를 냈어. 챙피해서 우찌 학교 댕기겠노. 선생들 못살게 굴던 그넘이 없으니까 머 교무실 분위기도 다 좋아졌어. 나는 그 당시 학생 상벌위원회에서 근무했는데,"
이 대목쯤에서 내가 끼어들어야 했다. 추억의 맥을 슬쩍 흐트러뜨려 화제를 돌려 놓지 않으면 네버엔딩 스토리로 갈 확률이 높았다.
"아하하 (억지 명랑), 와! 울아부지 완전 김두한 같네. 혹 17대 1로 싸웠다까지 나오는 거 아입니까?"
"아, 내가 그 길로 같으면 또 모르지. 하지만 나는 선생이었으니 평생 선생으로만 살았어."
"아부지 복싱하던 사진 거실에 걸려 있지요. 헌아, 니 할부지 그 사진 봤나? 보여 주까?"
"전에 엄마가 뷔이 줬잖아."
"아, 그랬더나. 근데 니 친구들 약속시간이 몇 시라 캤노?"
내가 한 김 뺐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학생 상벌위원회"에서의 활약 한 꼭지를 기어이 풀어놓으셨다. 그 내용은 가히 감동적이고 청렴하고 정의로왔다, 비록 어린 시절부터 수차례 들어왔던 내용이라 하더라도.
"지금도 그 할매 모습이 선해. 고구마 서너 개 달걀 두어 개를 봉지에 넣고 우리 집에 왔더구마. 이거 받으시고 울손자 좀 살리 주이소. 애비에미 없이 내가 키웠소. 내가 할무이, 이거 받으면 손자 못 살리고 안 받아야 살립니더. 우짤랍니까, 가지고 갈랍니까 두고 갈랍니까 했지. 그 할매가 섭섭해서 돌아서 가는 기라. 참 마음이 아프데.... 그 학생은 이웃학교 학생 8명을 때려 눕힌 주먹쟁이인데 알고 봉깨 이웃학교 학생들이 집단공격을 먼저 했더라고. 8명이 담벼락 우에서 각목 들고 기다리다가 확 달려들어 이 학생을 공격한 거라. 이웃학교 교장이 전화를 해서는... "
아버지는 간절하던 할머니의 뇌물을 받을 수 없었음을 가슴 아파하였다. 목소리마저 축축하셔서 나는 문득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가 슬그머니 눈물이라도 훔치면 어쩌지, 찰나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수십 년 전 일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하루에 한 주먹씩 나누어 회상하며 그 회상의 힘으로 견디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