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 내내 춥다를 입에 달고 산다. 겨울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벌써 반년째 떨고 있다. 그저께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참으로 따뜻하였다. 아스팔트 위의 햇살에 잠시 초여름까지 떠올렸는데, 하루만에 다시 쌀쌀해져 버렸다. 아침저녁으로 보일러를 잠깐씩 틀었다.
생각해 보면 4, 5월엔 이처럼 쌀쌀한 것이 맞다. 옛날엔 그랬다. 6월 중순이 되어도 선뜻 반소매 옷을 입지 않았던 기억이다. 대학시절, 6월 6일 현충일 지나고 한 복학생 아자씨가 과감히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뻐기듯 등교해 우리가 우~~ 야유를 선사했으니까. 그는 해마다 우리 科에서 가장 첫 번째로 반팔을 입곤 했는데 그의 홀로 반소매는 늘 썰렁해 보였었다. 언제부터인가 봄이 짧아지더니 5월쯤엔 덥다가 연발이 되었다. 그러니 어쩌면 지금의 이 날씨가 정상일지 모른다. 우린 옛날을 다 잊었다.
이맘때 엄마는 저녁에 내 방을 따뜻하게 덥혀 놓곤 했다. 하지만 나는 온기 많은 방바닥이 싫었다. 더운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종일 후텁지근하게 근무하다가 집에선 좀 냉랭하게 있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신경질을 팩팩 부리곤 했다. 아이, 내 방에 불 넣지 말라 했잖아!! 응, 근데 방바닥이 너무 차더라. 괜찮아 괜찮다고, 자면서 땀 나는 거 싫다 말이야. 나는 엄마에게 함부로 성질 부렸던 적이 많았다. 엄마, 피죤을 왜 이리 많이 했어, 냄새 지독해, 다시 좀 헹궈줘. 피죤 향기는 곧 날아가 버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그건 둘째 치고 엄마에게 짜증 부렸던 일이 지금껏 죄책감으로 남았다. 엄마 나이가 된 5월의 나는 엄마처럼 방을 덥히고 있다. 방바닥이 너무 차서 말이다. 우린 옛날을 다 잊었다.
#2
이 봄, 나는 무기력하였다. 사람도 여행도 영화도 술도 책도 쇼핑도 싫었다. 100세 시대에 반쯤 살고 벌써 지친 걸까. 동굴처럼 내 집에 갇혀 지내는 것이 가장 평온하였다. 먼 옛날 웅녀는 잘못 판단하였다. 여자가 행복해 보여 여자가 되고 싶었다면 오산이었다. 인간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는 것을 인간이 아니라 곰이니까 몰랐다. 곰으로 되돌아갈 방법은 진정 우울증 밖에 없을까. 이느무 마늘을 식탁에서 제거하면 가능할 것인가.
#3
최근 부쩍, 오랜 이웃들이 블로그를 접었다. 그들도 나처럼 더이상 재미가 없거나, 회의가 생겨서 그럴 것이다. 내가 시들해지면 남들도 그렇구나. 어쩐지 마음 한 귀퉁이가 쓸쓸해져서, 커서가 방황하다 길을 잃곤 했다. 사교성이 부족하다 보니 새로운 이웃들을 넓히기도 힘들고, 마음만 쎄하다. 우린 옛날을 다 잊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