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또 놀다

愛야 2013. 5. 29. 22:56

 

 

점심을 과하게 먹었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부풀어 올랐다.

                                  기분이 언짢기 그지없었다.(나는 배 부르면 신경질 난다)

                                  물 한 병 크로스백에 넣고 집을 나섰다.

                                  걸어야 하는 구실이 생겼다는 말이다.

                                  동네 가볍게 어슬렁대는 것으론 해결이 안 되겠기에 강도 높은 유격산책을 가기로 한다.

 

 

 

                                   

                                    마을버스로 도착한 이기대 종점, 오륙도 선착장에는 부산항으로 돌아오라는 용피리 옵빠의 절규가 여전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 유명한 오륙도를 나는 멀거니 본다.

바로 깨금발 뛰어 건너도 될 정도의 코앞이다.

오륙도가 바라보이는 곳은 여러 곳이다.

해운대 해쇽장에서도 보이고 송정에서도, 영도에서도 보인다만 이 포인트가 가장 가까울 것이다. 

사람들은 굳이 갯바위로 내려가 라면을 끓이거나 낚시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사진을 찍거나 한다.

 

 

 

 

 

 

해안 산책길로 가는 언덕으로 올랐다.

목표는 어울마당까지.

어울마당이 해안산책길의 중간쯤 될 것으로 짐작하였다.

관광안내소 직원이 어울마당까지 2시간쯤 걸린다 하여 사실 속으론 두려웠다.

해안 산책길은 그 지형 특성상 오르고 내림의 반복이 잦아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얀 샤스타데이지.

한 할매가 할배에게 단호히, 이거 들국화다 하였다.

할배가 맞나? 하니 또 단호히 그래, 맞다, 들국화! 하였다.

할매와 할배는 손을 꼭 잡고 할매가 할배를 끌다시피 가고 있었다.

 

강아지도 걸려서 오고 미취학 아동도 빨간 얼굴로 걸어서 온다.

흠, 그렇단 말이지.

글타면 나도 시이작.

 

 

 

 

 

죽는 줄 알았다.

안내소 아가씨가 농바위까지는 오르막이 대부분이라 하더니 과연이었다.

헉헉대는 내 숨소리에 내가 깜짝 놀라서 톤을 좀 죽이곤 했다.

코 고는 소리 스스로 놀라듯이, 쩝.

이노무 계단은 뭐 할라고 만들었노...

무릎 션찮은 사람은 힘주어 밟으며 올라서야 하는 계단이 흙길보다 힘들구만.

내려갈 땐 풀린 다리로 부들부들 비겁한 자세이고 말이야.

 

 

 

 

 

오른쪽은 나무 우거진 절벽인데, 걸핏하면 어마무지 좁은 길이다.

마침 한 아자씨가 마주 온다.

헉, 아자씨 배가 9개월은 족히 되어 보였다.

서로 모로 몸을 세워 에로틱하게 비켜서는데 그의 배가 바로 내 코밑에 두둥실 솟아 있었다.

아자씨는 아마 숨을 흡! 했으리라.

부디 순산하소서.

 

1시간 30분 걸었다.

땀은 비 오듯 하고 힘이 다 빠졌다.

가도 가도 어울마당은 왜 안 나타나는 기야.

어울마당은 내 막연한 짐작처럼 중간지점이 아니었나 보다.

적어도 2/3 거리는 되었다.

 

어느 지점에 이르자 올라가는 계단이 몹시 길었다.

이러면 거의 도로 쪽으로 다 올라온 거 아냐? 싶었다.

과연, 해안에서 산 중턱 순환도로로 거의 다 올라온 전망대 갈림길 지점이었다.

어울마당으로 가려면 다시 내려가는 방향으로 꺾어야 했다.

아, 제발, 오늘은 여기까지.

어울마당은 800미터 더 가야 된다잖아.

해안 산길 800미터가 얼마나 먼지 이젠 안 속을 테닷.

 

순환도로로 올라와 인도를 걸으니 내 숨소리가 매우 점잖아졌다.

조금 걷자 곧 어울마당이 저 아래로 보였다.

해안 계단 길로 갔다면 아직 한참 오르락내리락 중일 것이다.

직선거리의 힘.

 

 

 

 

 

 

 

언덕을 올라서면 꽃이 있다.

꽃 너머는 바다로 텅 비었다.

그래서 한순간 모든 것이 용서되는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