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김치 꿈나무

愛야 2013. 7. 20. 22:41

 

부모님을 떠나 스스로 밥을 해 먹기 시작한 이래 가장 대대적으로 김치를 담갔다.

배추 2포기.

200포기나 최소 20포기를 상상하신 통 크신 분들의 콧구멍에서 픽픽 바람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사람 살아가는 규모란 것이 천차만별이고, 다 나름의 패턴이 있지 않겠는가.

 

결혼 초기, 둬 번 담가본 나의 실험적 김치가 나로 하여금 김치를 사 먹게 만들었다.

깍두기라고 담근 것이 왜 깍두기<국>이 되었는지, 배추가 왜 죽지 않고 풋내만 났는지 그때 찬찬히 탐구하지 않았었다.

포기가 빠른 성격대로 에잇, 내 능력이 아닌가비여 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20년도 더 지나 더욱 입이 준 이 마당에 김치담그技에 매진할 필요가 없었다.

김치 담그려면 재료가 한두 가지인가, 차라리 사 먹는 게 저렴하다는 계산도 한몫했다.

MSG의 향기가 없는 단골집를 만들어 초심을 잃지 않고 사먹는 것만이 나의 노력이랄까.

 

지난 봄, 언니가 제법 많은 고춧가루를 준 것이 문제였다.

그것도 from country의 순수 고춧가루였다.

냉동칸에 재어둔 비싼 국산 고춧가루를 보자 어찌나 마음이 푸근하던지 찌개나 무침에 팍팍 인심을 썼다.

그 끝에서 난데없이 아, 더 늦기 전에 김치 다시 도전해 봐? 싶어져 버린 것이다.

여기서, 그럼 그동안은 고춧가루 없어 안 담갔느냐는 의문이 솟구치지만 살포시 접어둔다.

 

인터넷까지 동원한 후 먼저 실패의 확률이 적은 깍두기부터 시작하였다.

열무김치는 너무 짰고 얼갈이 김치는 너무 싱거워 물이 막 생기는, 내 멋대로 다이나믹하게 담갔다.

가끔 실수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깍두기와 열무 물김치는 맛이 꽤 좋아 내다 팔고 싶었다.

몇 번의 수련 후 대망의 배추를 처음에 한 포기 사 왔었다.

멸치+다시마+말린 표고로 낸 육수에 고춧가루를 개고 찹쌀풀을 쑤고, 멸치액젓과 새우젓을 섞고, 나름 치밀하게 배추김치를 담갔다.

그 첫 번째 배추김치는 내가 먹어봐도 맛있었다.

나, 완전 자신감 충만하였다.

이제 되얏부렀으.

 

그리하여 급기야 2포기를 산 것이다.

8시간을 절인 배추 2포기와 잘 숙성시킨 김치 양념을 앞에 놓고 남들처럼 속을 넣기 시작했다.

옴마야, 우짜면 좋노!!

배추가 세 쪽이나 남았는데 이런 불상사가... 양념이 바닥이 나 버렸지 않은가.

바닥에 흘린 한 톨의 양념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긁고 싶었다.

멘붕이 되어 장갑을 벗고 초스피드로 다시 양념을 만들었다.

육수? 그딴 거 음따. 찹쌀풀? 그걸 언제 해 식혀?

액젓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만 넣어 나머지 세 쪽을 마무리했다.

숙성은 뱃속에서 하는 걸로.

 

김치통에 담고 나서 주방을 보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김치가 5쪽은 슴슴하게 3쪽은 짜게 생겼다.

한 김치통 두 가지 맛, 아무나 못하는 재주여.

무림고수급에서만 통한다는 눈대중 손대중에 감히 도전하다닛, 쯧.

앞으로는 겸손히 계량을 할지어다.

 

비밀을 숨긴 채, 다니러 온 아들에게 뻐기듯 말했다.

허나, 엄마가 완전 김장 규모로 김치 담갔데이.

2포기?

머시라, 니 우찌 알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