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야
2013. 9. 1. 14:21
#1
뜬금없이 가을이 되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하루 사이에 한쪽 베란다 창을 닫다니. 그제 밤 공원의 온도계는 29도였는데 어젯밤에는 24도라고 알리다니. 햇살이 저리 얇아지다니. 북쪽 주방 창으로부터 끊임없이 바람이 들어와 가스 불을 흔들다니. 선풍기를 쉬게 할 수 있다니. 컵이 눈물을 흘리지 않다니, 이럴 수 있다니. 이 순간을 위해 견디었구나.
나는 빙수기를 씻어 찬장 제일 높은 칸에 올릴 것이다. 삼베 홑이불도 빨아 까끌까끌 장롱에 넣을 것이다. 그것들에게 일 년 후를 약속하고 싶지 않다. 여름을 살아내는 기력이 해마다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년 여름이 오기 전까지 죽을 자신도 없다.
날씨가 선선해지자 배가 고팠다. 물러지기 직전인 애호박을 볶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제육볶음까지 해동하여 오랜만에 거창하게 저녁을 먹었다. 더위에 억눌렸던 식욕의 대폭발이 아니기만 빌 뿐이다.
#2
몇 가닥 잡초마저 풍성한 벼로 느껴지는, 그래 9월이다. 우리는 머잖아 단풍 따라 전국을 헤매고, 겨울로 들어서자마자 봄을 기다릴 것이다. 봄 다음 다시 여름이라는 사실을 잊고 말이다.
Tavis Johnson - Walk With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