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광안리와 해운대를 벗어나면 다른 풍경이 있다.
"k야, 국화빵이다. 사까?"
"점심 밥맛 없을 껀대."
"점심. 뭐 먹고 싶노?"
"음..... 나는 비빔밥 먹을 거라고 아까부터 결심했다, 愛야 니는?"
"나는 국화빵."

국화빵 2천 원어치를 산다.
젊은 아줌마는 8개를 봉지에 담는다.
"하나 더 낑가 주셔야지요."
K가 당당히 말한다.
봉지에 담긴 국화빵은 바삭한 대신 기름기가 많다.
옛날의 국화빵처럼 포근하고 담백한 맛은 아니다.

길냥이가 우리를 따라오다가 그늘에 잠시 앉는다.
우리는 서로를 구경한다.
무늬는 호랑이인 주제에 어찌나 겁이 많은지 조금만 아는 척을 해도 움찔 달아난다.
관광지에서 살아가는 법이 부족한 어린 고양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나 너희가 있다.
모든 이들이 돌아가면, 국화빵 아줌마도 포장을 말아 돌아가면 너희는 그제서야 바위나 풀숲에 앉아 바다를 본다.
다음날 사람들이 다시 밀려올 때까지 너희는 무료하다.

수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따만한 우체통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내 눈에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얼만큼 커야 놀랄 심산인지, 걸리버 세상을 상상한 내 잘못이다.
아니면 웬만한 규모에는 동공 미동조차 않게 단련된 탓이거나.

세련된 커피숍 대신 임시건물 비닐 커피집이 즐비하다.
여기서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저리 많을까 의아해질 만큼.
새해 일출객들을 염두에 두고 하나씩 둘씩 늘어났을지 모른다.
나는 이런 것들이 재미있다.
오머오머 읍내 다방을 보는 듯한 촌스런 향수가 있다.
국화빵을 저런 커피집에 앉아 먹어도 좋으련만, 잠깐 걷는 사이 우리 빵 봉지는 벌써 비었다.
커피집 이름들도 다양하였는데 지금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그저 서프라이즈.

망설임 없이 둥둥 바지 걷고 철 지난 해찰을 즐기는 이는 언제나 여자들이다.
저러고 친구끼리 노는 중년 아자씨들은 본 적이 없다.
있다면 술 취해 오줌 누러 들어가는 것.
노는 여인들, 사랑스럽다.

비빔밥 아닌 돌솥밥을 늦은 점심으로 먹고 다시 도심으로 돌아간다.
해는 붉게 죽어간다.
그래, 우리도 석양에 걸렸다.
남 부럽지 않은 성인병이나 서로 자랑하면서 하찮다는 듯 피식 웃는다.
뭐, 그게 어때서.
그녀의 조그만 자동차는 나를 원점에 내려주고 떠난다.
언제 또 볼 것인지 기약없다.
친구로 40여 년, 우리 늘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