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외로운 여름

愛야 2015. 6. 4. 02:33

 
 #1.

이미 한낮은 여름과 다름없다. 

나는 양산을 챙기기 시작했으며 운동화에서 샌들로 갈아탔다.

머잖아 삼베이불을 꺼내고, 팥빙수를 만들며, 에어컨을 틀까 말까 망설일 것이다.

원색적인 능소화 사진을 찍고 돌아온 날은 지쳐 운 좋게 초저녁에 잠들지도 모른다.

그런 날은 모기 소리에 잠을 설치며 눈꺼풀을 무겁게 밀어 올릴 것이다. 

작년의 여름과 같고 내년의 여름과 다름없으리.
다름없을까?부디 다름없어야 할 텐데.

어제 같은 오늘이란 때로는 요행이기도 하다.

 

 


   #2.

지하철을 타려고 센텀시티 역으로 걷는다.

후줄근한 40대 남자가 마주 걸어온다.

세일즈맨의 명함 같은 검은 사각가방을 들었다.

그의 얼굴이 유난히 하얗다. 

그와 스치기까지의 짧은 시간에 나는 땀에 젖은 그의 스케줄을 쉽사리 읽는다.

남자는 출근하며 선블럭을 지나치게 발랐던 것이다.

일명 가부키 화장.

오늘 햇살 아래 돌아다녀야 할 일이 많은 게지.

얼굴과 목의 경계가 지나치게 드러난 것은 아내가 발라주지 않았다는 증거다.

아직 자동차가 없는 그로서는 믿는 건 선블럭 뿐, 사무실을 나서기 직전 흠뻑 문질렀을 게다.

내가 양산을 꼭 챙기는 것처럼.

나는 그를 뒤돌아 본다.

가부키 남자는 허덕허덕 팔자걸음으로 덥게 가고 있다.
위 문장의 한 글자를 고친다.

ㅡ그의 얼굴<만> 유난히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