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별 거 아닌

愛야 2015. 9. 5. 00:41

 

 

 

 

 

 

 

#1

바람과 공기가 천천히 가벼워지고 있다.

불현듯 9월.

사람들은 땅으로부터 얻은 것을 깨끗이 손질하여 하늘 아래 펼쳐 넌다.

먹거리를 주셔 감사합니다, 뜨거운 햇살로 마지막 물기마저 걷어가소서.

미이라가 된 무와 버섯과 나물과 과일은 어느 깊은 겨울 우리들의 가을을 깨울 것이다.

 

 

 

 

 

 

   

 

 

#2

도시의 감도 월담한다.

해마다 담 안의 감들이 담 밖에서 익는다.

해마다 오며 가며 눈여겨 보았었다.

삭막한 골목길에서 계절의 한 풍경을 연출하는 감나무가 기특하다.

작년에는 제법 발갛게 익도록 달려 있더니 어느 날 호된 비바람에 떨어졌었다.

차들이 거침없이 뭉개었고 사람들의 발이 마저 밟고 지나갔다.

 

아무도 탐내지 않아 감들이 조금 서운해 보인다.

우선 한 개만 슬쩍 따 볼까 응큼한 마음을 품는다.

먹어 봐야 땡감인지 단감인지 알 것이고, 그래야 다 훔칠 건지 말 건지 결정하겠기에.

작년처럼 길바닥에서 어린 감의 잔해를 확인하고 싶지 않다나 뭐라나.

감나무 아래를 지나며 즐기는 이 짧은 설렘마저 곧 잊어버린다.

다음날 감나무 담장을 다시 지날 때까지, 내년 감들이 다시 월담할 때까지는.  

그러니 평화란 늘 망각에서 출발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