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끄읕~!

愛야 2015. 9. 28. 21:23

소화불량 주간이 돌아왔다. 아들도 나도 기름질 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튀김류는 장만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을 하는 아들의 뒤통수를 바라보자니 뭔가 명절 냄새나는 음식을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별수 없이 새우와 오징어 튀김을 딱 열 개씩 하였다. 아들은 좋아하며 반을 먹고 오늘 떠났다. 반은 남았다. 냉장고를 꽉 채운 남은 음식들은 다 내 몫이 되었다.


냄새를 맡고, 간을 보고, 끼니를 겨누어 상을 차리고, 나는 평소의 습관을 벗어난 시간표로 움직였다. 나중에는 배가 더부룩하고 괴로웠다. 추석 전날에는 심지어 온종일 제대로 밥도 먹지 않았건만 배가 웃기게 불룩하였다. 배는 등대처럼, 밤에도 꺼지지 않았다. 커피마저 속에서 거부했다. 약간의 체기도 느껴졌다. 나는 애꿎은 엄지와 검지 사이의 혈 자리만 모질게 눌러댔다. 밤 열 시가 넘어가자 겨우 조금씩 소화기관이 가라앉고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러자 제일 먼저 뜨거운 커피가 고팠다. 거 참. 속이 딱딱 알아서 밀어내고 댕겨준다니까. 온 세상에 백설표 식용유 방울이 떠다니는 것 같아.


추석 다음 날인 오늘, 아들은 집에서 밥을 한 끼도 먹지 않았다.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 점심과 저녁까지 먹고 기차 타러 역으로 갔다. 그러니 음식을 특별히 해 둘 필요가 사실상 없다. 잘 알면서도 명절의 구색을 갖추느라 이것저것 몇 가지라도 장만하는 멍청한 짓을 해마다 되풀이한다. 아들이 어릴 때는 명절 분위기를 내주기 위해 그랬다손 치지만 이젠 아들도 명절이 귀찮을 나이가 되었는데 말이다. 

 

나는 다시 내 해시계에 맞추어 일어나고 밥 먹고 산책하고 잠이 들 것이다. 편하다. 몸도 정신도 더이상 더부룩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참으로 문제적 체질이 아닌가. 나 아닌 다른 누구와 함께 지냄이 이토록 편안하지 않다니. 비록 그 존재가 자식이라 해도 말이다. 대학진학으로 아들을 내 곁에서 떼어놓은 지 겨우 5년 만에 나는 완벽하게 독거노인 모드에 최적화된 것인가. 돌아오는 설에는 아들놈 뒤통수가 가련하든 말든, 평소처럼 굳건히 지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