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다
#1
벌써 몇 달째 동네 곳곳의 하수관을 재정비 공사 중이다.
아파트 옆길의 포장을 깨부수고, 파고, 묻고, 덮더니 다음에는 아파트 앞길을 깨부순다.
아파트 정문 앞길을 공사하던 며칠간은 소음에 신경이 갉아 먹히는 듯했다.
저녁 6시가 가까워지면 어느 골목에서 일하던 포크레인이 퇴근을 했다.
조그마한 포크레인은 어떤 날은 초록색이고 어떤 날은 노란색이었다.
멀리서 웅웅 땅을 울리며 다가와서 웅웅 땅을 울리며 멀어져 갔다.
느리고 요란한 포크레인의 퇴근이 끝나면 하루의 소음도 퇴근했다.
비로소 동네는 적막하다.
나는 포크레인이 멀리서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면 흘낏 시계를 보았다.
오늘은 일찍 일이 끝나네, 오늘은 늦게까지 일을 했구나, 나와는 상관도 없는 가늠을 하며 창가에 붙어 서서 내려다본다.
가끔은 이 모든 풍경이 쓸쓸해진다.
#2
2년이 넘도록 우리들의 '세 친구 만남'이 없었다.
왜일까.
고백하자면, 애달프지 않고 그립지 않았다.
1년에 한 번 만나 무슨 깊은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우리는 그 무의미함을 다 알고 있었다.
다만,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꼭 쥐고 차마 놓을 수 없었을 뿐이다.
20살부터 우리는 친구였고, 그래서 영원히 '친구여야' 한다는 강박 말이다.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도록 '우리'를 과거에 묻을 용기가 누구에게도 없었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꼭 보자고 한다.
그래, 그러자, 그러지 뭐, 그런데 나는 참 심드렁하구나.
내가 이런데 그녀인들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나면 헤어질 때까지 우리는 늘 눈물 나도록 즐겁고 기뻤었다.
이번에도 우린 어제 본 듯 아무런 거리감이 없을 것이다.
한 친구가 영국에서 10년 만에 돌아왔을 때도 그러했다.
그건 그것대로 진심이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깊은 회의, 이것도 이것대로 진심인 것을.
늪처럼 우울하지만, 불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김정운 교수가 노후대책이란 연금만 들 게 아니라 외로움도 즐기고 받아들여야 한다지.
나는 노후대책을 지나치게 잘 하고 있나?
만기날은 대체 언제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