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반지

愛야 2016. 6. 15. 11:15

 

 

 

아들의 손가락에서 무언가가 반짝 빛났다.

커플링 했나?

응.

니가 골라 샀어?

응.

성의는 갸륵하다만, 링 디자인이 별로라는 말은 입 밖으로 뱉지 않고 삼켰다.

쉐끼, 남 하는 짓은 다 하는구나.

그래, 알아서 이별도 하고 사랑도 하면서 그리 살아가거라.

아들의 연애와 결혼에 목숨 거는 재벌이 아니라 엄마는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내가 반지를 끼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대학 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빨간 루비가 사각형으로 박힌 반지를 끼었다.

결혼예물은 다이아몬드를 거절하고 블루 사파이어로 하였다.

다이아몬드 사이즈로 결혼의 성공을 저울질하는 풍토를 경멸했던 탓만은 아니었다.

짙고도 투명한 사파이어의 빛깔을 평소에도 몹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굳이 그럴 것도 없었다.

가능한 한 커다란, 번쩍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도 무방할 것이었다.

다 내 재산이 되니까.

 

반지를 끼고 어린 아들을 목욕시키다 콧잔등이 살짝 긁히자, 바로 빼서 서랍에 넣은 후 끝이었다.

수년 후 결혼반지는 다른 패물들과 더불어 쌀과 기름과 이자와 되었다.

다이아몬드를 거부했던 내 치기를 깊이깊이 반성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결혼에 대한 긍정이 이미 사라졌으므로 결혼예물에 남은 미련과 애석함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반지를 잊었다.

상황을 그따위로 만든 사람에 대한 오랜 증오심과는 별개였다.

 

아들의 커플링을 보자 문득 내 손가락에 반지가 있던 시간이 생각났다.

생각났으나 그립지 않았다.

오직 생경하였다.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원래도 손가락이 통통하였는데 나이 먹어 더욱 두툼해졌다.

이런 짧고 통통한 손에는 무엇을 걸쳐도 아름답지 않아....

그 빨간 루비 반지가 지금 있다면 새끼손가락 쯤에 들어갈 것이다.

옛날에는 손 희고 이쁘다는 말깨나 들었지만 이제 주름지고 얼룩 생긴 마당에 무엇을 바라겠는가.

 

아들의 커플링은 여성스러워서 꼭 여자 것을 뺏어 낀 듯 보였다.

중성적이고 심플한 링도 많던데, 보는 안목이 영 아니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니니 타박할 권리가 없다.

기쁘게 받아 준 아들의 여자친구가 고마울 뿐.

 

 



 




 

 

 

 

                                

                                                                                                                     토끼풀꽃이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