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혹은 막대사탕
#1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챙겨 나오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박물관 긴 담을 지나는 사이 머리카락이 촉촉하게 젖었다.
앞에 후드를 쓴 한 여자가 천천히 가고 있었다.
후드가 이럴 땐 제법 유용하구나.
그래도 많이 쏟아지면 어쩌려고 저렇게 느릿느릿?
머리카락 달라붙는 걸 극도로 삼가야 하는 나는 바삐 지나쳐 가며 흘깃 보았다.
후드 깊숙한 그녀의 입에 가느다란 담배가 물려 있었다.
대학가라 종종 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자애들을 보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비까지 맞아가며 '끽'할 것까지야.
내가 횡단보도에 도착해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느리게 그녀도 곁으로 다가왔다.
(빨리 가나 느리게 가나 맞은 비의 총량은 같구먼)
후드 속 그녀는 길고 부스스한 얼굴로, 우중 담배를 즐길 만큼 파격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입을 오물거렸다.
볼이 볼록하게 되었다.
담배를 씹어 드시...어랏, 저것은 츄파춥스...?
다시 보니 그녀가 물고 있는 흰 것은 막대사탕 손잡이다.
손으로 전화기 보느라 비스듬히 입꼬리에 물려놓은 그것.
나는 그 머시냐, 가느다란 여성스러운 담배, 그것인 줄 알았다.
시력 나쁜 나의 실수, 이런 죄송할 데가!
그녀에게 사과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 들며 혼자 머쓱했다.
#2
걸어오며 이런 생각을 했다.
담배라고 여겼을 때는 쯧쯧 혀를 찼는데, 막대사탕이라고 깨닫자 바로 안도되던 마음.
나, 꼰대?
막대사탕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닌데도 그랬다.
막대사탕은 막대사탕일 뿐 그녀의 평소 흡연 여부와는 기실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나는 막대사탕임을 깨닫자 그녀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자라고 단정하였던 것이다.
만약 처음 흘깃 본 그 상태로 집으로 왔다면 나는 그녀를 우중 끽연녀로 기억했겠다.
우리가 '안다' 또는 '보았다'라는 것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일방적인 찰나인가.
나는 입으로만 편견타파를 외쳤나 보다.
하지만 담배 피는 그녀들에게 눈총 레이저를 쏘진 않으니, 속으로 불편해하는 것도 내 자유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