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밤 외출
#1
24센티 볶음팬과 사각 찬기 2개를 사서 쇼핑몰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밤이었다.
털모자 쓴 내 머리를 겨울 밤공기가 시원하게 식혀 주었다.
잠시 후 도착한 집으로 가는 버스는 아쉽게도 만원이었다.
앞(前) 정류소가 버스 회차 지점이라 거기서 버스는 꽉 차 버리곤 했다.
나는 찬 공기가 좋아 앞 정류소까지 걷기로 했다.
#2
큰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선 것은 나의 의도된 동선이었다.
옛날에는 그저 질러가는 용도의 좁은 골목이었는데 요즘은 온통 카페와 술집 밥집으로 채워졌다.
그 유명한 서면 전포동 카페거리.
얄팍한 가게의 벽을 뚫고 흘러나온 음악은 서로 섞이고 방해되어 도무지 무슨 음악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좁은 골목은 청춘들로 넘쳐나서, 가만히 서 있어도 떠밀려 흘러갈 것 같다.
맞은편에서 여자(애)들 몇이 웃고 떠들며 걸어왔다.
가게 앞에 서 있던 XY 염색체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자동으로 그녀들을 따라 흐르는 게 보였다.
무언가를 기대하며 밤거리로 쏟아져 나온 그들이 귀엽고 그리고 동시에 부질없어 보였다.
골목 모퉁이를 돌자 더욱 소란했는데, 간판이 아예 대놓고 @@미팅룸이다.
맥줏집 앞에서 목이 터져라 호객하는 청년과 지나가는 청년들, 그들의 접점은 젊음이었다.
바야흐로 금요일 밤 8시.
그 거리를 걷는 인파들 중 나만큼 나이 먹은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단언컨대 반경 2km 이내에서 내가 가장 나이 많았을 것이다.
#3
목적했던 버스정류소에 당도하였다.
회차 지점이라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이 언제나 많지만, 그만큼 좌석에 앉을 확률도 높다.
곧 버스가 도착하여 멈추며 앞문을 열었다.
그때, 머리 하얀 할아버지와 할머니 커플이 맨앞에 서있던 아가씨를 밀치며 먼저 버스에 올랐다.
줄 따위 안중에 없는 이 노커플은 대체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
좌석도 많구먼 왜 저렇게까지?
좌석을 차지하기 위한 과감한 몸싸움은 노인네 특징이다.
결국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내가 그 거리를 떠날 때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부디 미래의 내 모습이 아니길, 아니어야 한다.
2019년産 홍매화
손톱만한 꽃송이에 겹겹이 포개진 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