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記

부스러記 14, 정답은 없음

愛야 2020. 1. 8. 14:58

   2019. 11. 26. 화요일

주섬주섬 짐을 챙겨 친정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 짝이 없다.

끝나지 않는 회전바퀴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

엄마는 내가 들어서자 안도의 표정이 역력하다.

심한 장염으로 아버지가 이른 아침 병원으로 가고 엄마는 요양보호사와 있으니 불안하셨던 차다.

그 말간 눈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난다.

지난 추석 무렵보다 엄마도 수척해졌다.

나는 이날 한밤중까지 12번의 기저귀를 갈았다.

 

   2019. 11. 29. 금요일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는 금식하다가 이제 죽 드신다.

그리고 내내 주무신다.

엄마가 곁에 없으니 잠을 푹 주무시는 것도 보약이다 싶지만, 너무 잠만 주무신다.

엄마는 하루에도 수차례 니 아부지한테서 와 전화가 없노? 하시며 병원상황을 궁금해 한다.

그리고 그 말미에는, 얼릉 집에 오면 좋겠다 한다.

몇 번은 잘 대답해 드리다가 급기야 나는 소리를 지른다.

엄마 제발 쫌!

   

   2019. 12. 2. 화요일

아침 요양보호사가 오자 엄마를 맡기고 나는 병원으로 날아가서 아버지 퇴원수속을 한다.

아버지는 이번에 호되게 아프고 나서 외견상으로도 많이 달라졌다.

하긴 90 노인이다.

한번 아플 때마다 그 타격은 너무나 확연히 표가 난다.

걸음도 잘 걷지 못하신다.

겨우 부축하여 집으로 모셔다 놓으니 앞이 아득하다.

침대에 아픈 두 노인을 눕혀놓고 간병하기란 저질체력 내게 너무 벅차다.

지난 추석 무렵 3주일 간병하고 나는 녹초가 되었었다.

그 후유증에서 회복도 되지 않았는데 2달만에 또 그런 상황이다.

까다롭고 규칙이 많고 괴팍스런 아버지가 엄마보다 더 손이 간다.

문제는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

 

   2019. 12. 30. 월요일

오후 요양보호사가 오기 직전, 친정집을 떠났다.

5주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베란다에서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고 서 계신다.

 

아버지 퇴원하고 집에서의 회복, 그간의 일을 이루 다 쓸 수 없다.

이번에 머물며 아버지와 많이 싸웠다.

아버지도 자신이 전과 다르다고 느끼셔서, 너 있을 때 문갑에 쟁여진 온갖 것들을 정리하자고 한다.

귀중품(고작 금붙이)을 따로 싸놓고, 집 등기필증을 찾아드리고, 통장정리를 하고,

십 수년 묵은 병원계산서와 처방전과 영수증 묶음 따위를 쌔리 버리고, 그러면서 언쟁과 충돌이 많았다.

아버지가 전과 다르다고 걱정된 것도 그런저런 과정에서 느낀 것이다.

장학관과 교장을 지냈던 사람이 저리 절차에 소통이 안되나? 싶은 순간이 잦았던 것이었다.

나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요양보호사들과 스케줄 조정하며 잘 지내시라 하고 나는 떠났다.

아직도 엄마의 요양병원행을 거부하고 집에서 일상을 누리게 하고 싶다시니, 그 뜻은 거룩하지만 더 할말이 없었다.

지난 가을 잠시, 내가 친정으로 합가해야겠다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먼저 죽을 듯해서 마음을 접었다.

자식들이 어떤 방안을 내놓아도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아버지.

그렇다면 본인이 선택하신 길을 가실 수밖에 없지 않는가.

당신은 엄마 한 사람을 돌보았지만, 한 세대를 내려가 자식은 두 분을 간병해야 한다.

이제 와서 자식이 '집'에 들어와 자신들을 간병하기 바란다면 그건 너무 뒤늦은 바람이다.

자식들도 다 노년이 된 이 마당에 진로수정을 어찌 할 것이라고.

나는 냉정해지기로 했다.

부모님이 부모님 자신들만 생각하시는 것처럼.

 

돌아온 내 집은 냉기가 가득하다.

떠나있던 시간이 백만 년 된 듯하다.

나는 먼저 화분에 물을 준 후, 난방을 돌리고 보리차를 끓인다.

그제서야 집에서 사람냄새가 난다.

청소를 한 다음 , 친정에선 도무지 먹을 짬이 없었던 辛라면을 결국 집에 와서 먹는다.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