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향기를 위하여

愛야 2021. 1. 12. 22:38

#1
아침에 일어나면 미지근한 물부터 한 잔 가득 마신다.
밤새 말라있던 오장육부를 깨우기 위해서다.
아침 공복에 물 마시기를 습관으로 안착시키려고 노력 중인데 겨우 6개월 남짓 되었다.
여기까지는 꽤 모범적으로 보인다.

물 마시고 5분가량 지나면 커피물을 올린다.
그때 찰나의 갈등이 스친다.
커피를 큰 잔으로 배 부르게 마실까, 작은 잔으로 간에 기별만 줄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배 부르게'다.
건강인으로 거듭나려면 공복 물 마시기도 좋지만, 공복 커피부터 끊는 게 옳다.
하지만 나는 애초 그딴 훌륭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녹차를 마시자고 결심을 아무리 해도 커피 카페인, 특히 공복 카페인이 좋다.
그래서 먹다 남은 고급 녹차는 방향방습제로 전락하기 일쑤다.
호모 커피쿠스.

#2
뻥튀기 한 봉지를 샀다.
뻥튀기는 목으로 넘어가는 게 없으니 부담스럽지 않고, 대신 주전부리 욕구는 충족시킨다.
오늘처럼 치과에 다녀오는 날은 씹지 않아도 되는 뻥튀기가 딱이다.
비스듬히 앉아 t.v를 보며 뻥튀기를 몇 판 뜯어먹었다.
문득 몸 앞자락을 내려다보았더니, 온통 하얀 잔해로 처참하다.
그리운 눈(雪)이 내 가슴팍에 내렸다.

뻥튀기 서너 개에 청소기까지 돌린다.
때맞추어 구석에서 구스 솜털이 날아올랐다.
뭬야, 양계장인가.
10년차 패딩 충전재가 가끔 빠져나오나 본데, 노안에 그 솜털 보이지도 않았다.
온 집안 물걸레질까지 하고 털썩 눕는다.
오오, 창대해라 창대해.

#3
지난 5월 한샘에서 보내주었던 로즈마리는 죽고 빈 화분만 남았다.
서운해서 크리스마스 셀프선물로 오천 원 주고 로즈마리 한 포트를 샀었다.
화원 아저씨가 되도록 겨울 지나 봄에 화분갈이를 하라고 해서 비닐화분 그대로다.

웃자란 부분을 조금 잘랐다.
푸른 종지에 담아 머리맡 테이블에 둔다.
향은 기대만큼 퍼지지 않았다.
그래서 코를 가져다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