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하는 노인
근처 체육공원으로 밤 운동 가는 길이었다.
골목길을 환히 비추는 가로등을 흘깃 올려보다가, 처음 보는 표지판을 발견하였다.
정확하게는 처음 보았다는 것일 뿐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높게 달려있기도 하였지만 운전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관심 표지판이 아니니까 말이다.
표지판이 새것처럼 깔끔한 걸로 봐서 설치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음 직했다.
그것은, 노인보호구역(Silver Zone) 표시였다.
이 동네가 낡아 재개발까지 추진 중이니 당연히 노인들도 많겠지만 그렇다고 보호구역까지?
나는 노인보호구역이란 표시판에 잠시 멍해졌다, 더구나 그 표시판 아래를 지나가는 머리 흰 나로선.
쳇, 누가 노인을 보호한다고, 이 좁은 일방통행 골목길에서 노인이 걸리적댄다면 그냥 밀고 가버리지 않겠어?
이런 시니컬한 생각을 하며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그날도 열심히 걷고 돌아왔다.
수년 전부터 나의 주거조건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동네에 공원이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가까운가다.
그것은 노인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다는 신호였다.
그날 집에 돌아와 노인보호구역을 검색해 본 후(위 링크) 나는 항변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학교 주변이 어린이 보호구역인 것처럼 노인들이 운동하는 동네공원 근처는 노인보호구역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무엇으로부터?
오로지 자동차 속도로부터?
이 도시는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버린 도시다.
"남는 것은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가 정설로 되어버린 우리나라 제2의 도시.
생산력은 점차 줄고, 젊은 피의 유입 동력이 없다.
주변에 대학이 몇 개 있는 이 구역은 그나마 학생들 덕분에 평균 연령을 낮출 것이다.
도시의 북쪽에서 이름을 떨치던 공단은 아파트에게 자리를 내어준 지 오래다.
오직 바다를 팔아 수입을 올리는 게지, 아름다운 해안절벽에 철탑을 박아 케이블카 혹은 스카이워크를 설치하는 몸부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고, 그보다 바다를 더더 사랑한다.
하지만 바다와 단둘이 남겨지고 싶지는 않아.
늦은 오후, 단풍나무 아래 웃음이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