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투정
愛야
2023. 3. 22. 14:41
소문대로 봄은 거리에 이미 가득하였다.
낡은 난간 틈으로 기를 쓰고 들이미는 치명적 노랑이 그것을 증명하였다.
벚꽃도 환하게 피었거나 피고 있는 중이었다.
온 세상은 머잖아 꽃으로 덮일 듯한데, 베란다 내 꽃기린은 느리기만 하다.
얼마 전 웃자란 줄기를 잘라 키를 낮춘 것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다.
그나마 분홍꽃은 몇 송이 피었으나 빨간 꽃은 오래 침묵 중이다.
잎도 새로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너그러운 나는, 꽃기린이 죽지만 않는다면 곧 흙갈이를 해 줄 계획이다.
그러면 저도 꽃을 피우지 않고 견딜 재간이 없을 터.
누군가의 호야는 해마다 귀여운 꽃을 조롱조롱 피운다는데 나는 여즉 호야꽃을 보지 못했다.
화분을 가지기 시작한 이래 호야를 키우지 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민망할 따름이다.
식물들은 늘 나에게 인색하다.
아니면 내가 그들에게 인색한가.
영양앰플이나 부지런한 흙갈이나 멋진 전정가위질을 해주지 않은 보복이라면 할 말이 없다.
아침에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창문을 열어 햇빛과 바람을 주는 정도의 정성은 그들에게 큰 정성이 아닌 모양이다.
무엇을 원하는지 말을 해다오, 나는 아는 것도 모르는 무심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