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記

부스러記 28, 여름으로 가기 싫어

愛야 2023. 6. 15. 00:10

  2023. 4. 22. 토요일

점심 무렵 일치감치 단골 채소가게에 가서 장을 봐 왔다.

이 가게는 늘 사람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늦은 오후에 가면 매대가 비기 일쑤였다.

양파, 감자 등을 샀더니 무거워 허덕대며 집에 들어섰는데, 현관에 낯선 운동화가 있다.

내 것 아닌 운동화의 주인이 가볍게 문을 따고 들어왔다면, 바로 그넘이지.

 

"어, 아덜 왔어?"

아들이 방에서 나와 내 장바구니를 받아 들며 기웃이 안을 헤쳐 본다.

"뭐 맨 풀떼기만 샀노."

"야, 넌 오면 온다고 미리 예고를 해야 장을 봐 오지."

너를 위한 고기는 냉동고에 상시대기 중이라는 말은 안 했다.

 

내가 부모가 되어서야 깨달은 자식들의 오해 몇 가지가 있다.

본인들은 존재 자체가 선물이어서 부모의 힘을 팍팍 솟게 해 줄 거라는 거.

언제 어떻게 놀래키며 방문해도 부모는 막 좋아서 죽을 거라는 거.

아,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렇다고?

그렇다면 나는 모성불량한 주제에 따지기나 하는 이상한 엄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하냐 안 하냐의 문제가 아니란 점에서 나는 당당하다.

알리라고, 제발 미리, ktx 좌석에서 졸다가 깨서라도 알리는 게 뭐 그리 어렵냐고!

 

  2023. 5. 9. 화요일

어제 어버이날은 참으로 쓸쓸하였다.

내 아들이 곁에 없어서가 아니고, 내 부모님이 다 계시지 않아서였다.

작년에는 두 분 다 계셨는데, 나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어제는 많이 붐비고 고속도로도 밀릴 것 같아 오늘 가기로 했다.

가까이 사는 언니나 오빠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나 혼자 타박타박 가고 싶었다.

지난겨울 엄마를 봉안한 후 처음이다.

 

유리창 안의 두 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에게 죄송하였다.

28년을 병석에 계셨던 엄마는 납골당이 답답하니 훌훌 자유롭게 해달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우리 식대로 하였다.

남은 자가 편한 대로 한 셈이다.

우리가 엄마 아부지 생각날 때 찾아갈 곳은 있어야 해서, 엄마, 벽 안에 가두어 미안해요.

아, 이걸 변명이라고.... 나는 짧게 울었다.

 

  2023. 6. 5. 월요일

드디어 화분 분갈이를 하였다.

지난달에 흙과 마사토를 사서 베란다에 던져두었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다 피하다가 늦어졌다.

파키라는 3줄기짜리 화분이었는데, 2줄기와 외목대로 분리했다.

호야는 좀 헐렁하게 분갈이 하였더니 뿌리 하나가 남아 작은 화분에 새로 심었다.

꽃기린은 제 화분 그대로 흙을 갈고, 그중 션찮던 두 뿌리를 가려내서 따로 심어두었다.

흙을 갈아주어도 분발하지 않고 계속 죽지도 살지도 않고 있으면 가차 없이 버리려는 밑그림이다.

마치고 보니 6개였던 화분이 9개로 늘어났다. 

식물의 종류는 여전히 3종류뿐이지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