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 경주
겨울과 봄을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탓하며 오로지 집에 웅크리고 있었다.
얼마 전 천안에 사는 외사촌 J가 여행 가자고 전화를 했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위인데 둘 다 막내에다 같은 중. 고등학교를 다녀 자랄 때도 친구처럼 죽이 잘 맞았다.
사실 내 속마음은 아니 아니, 절대로 안 움직이고 싶어,라고 했으나 겉으로 뱉진 못했다.
내가 언젠가 외갓집 있던 함안에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녀는 그것을 기억하여 챙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야 갈대, 그건 그때고 지금은 그저 꼼짝하기 싫었다.
외사촌도 함안은 가을에 가고 이번에는 통영이나 경주쯤 어떠냐고 했다.
글타면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경주 가겠다고 동의하였다.
그녀가 숙소와 본인의 ktx를 예약한 후 나도 겨우 왕복 srt표를 예약하였다.
표를 예약하고 나니 뜻밖으로 여행의 설렘이 느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부산에서 경주는 열댓 번쯤 엎어지면 코가 닿을 테지만 그래도 道 경계를 넘어가니 여행은 여행이다.
흠.... 다들 이 맛에 떠나나 보다.

부산역에서 열차가 출발하면 한참을 풍경은커녕 깜깜한 터널만 계속 지나는데, 나는 늘 그것이 답답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심봉사 광명 찾듯이 눈앞이 환해지더니 어느새 울산이었고, 다음 정차가 바로 경주였다.
너무 시시하게 34분 만에 경주역에 닿아버린 후 1시간여 혼자 빈둥거리니 J가 도착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외쳤다.
"愛야, 니 우짜면 그리 큰고모 같노!"
여기서 그녀의 큰고모는 즉 우리 옴마다.
우리는 점차 부모의 마지막 모습에 근접하고 있었다.

시내로 나간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무작정 방향만 짐작해서 걸었다.
이 도로 따라가면 첨성대쯤 나올 것 같네, 그러면서 걸었다.
차 렌털도 잠시 말이 나왔지만 고작 1박 2일이니 그냥 걷자고 했다.
경주는 시내에 '대릉원'과 '첨성대' 등 유적지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걸어서 둘러보기 좋다.
둘 다 맹렬하고 알차게 뽕 뽑는 타입이 아니라서 봄볕에 어슬렁거리자고 은연중 합의하였다.
다리가 좀 피곤할 즈음 길가 벤치에 앉아 바람과 먼지를 구경하며 물과 쑥전을(J 협찬) 먹었다.
먹다가 뒤를 돌아보니 등뒤는 경주빵 어느 매장이었다.
빵집 앞 벤치에 앉아 그 집의 빵 아닌 것을 심상하게 먹고 있는 할머니들.
둘은 풀썩풀썩 웃었다.
첨성대 주변은 편안하였다.
멀리 산이 보이고 낮은 집들은 평화로웠다.
근처 주민에겐 동네 공원일 텐데, 막힌 곳 없는 동네 공원에 첨성대가 저렇게 무심히 딱 서있는 것이다.
무려 1400여 년 가까이 말이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경주로 확 이사 갈까?
첨성대 건너편 '대릉원'의 담장을 따라 걸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 담장을 따라 한참 걸었던 이유는 J가 찾는 돌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긴 담장 중간쯤 출입구가 있어 기웃대니까 관리아저씨가 입장료 없으니 그냥 들어와라 했다.
SNS에 올라온 대릉원 돌담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담장은 어디쯤일까여? 물었지만 그는 모른다 했다.
J가 찾는 사진 속 돌담은 울퉁불퉁한 자연의 돌이었으나 우리가 본 '대릉원' 돌담은 매끈한 찍어낸 돌이었다.
이 많은 유적을 두고 뜬금없는 돌담을 묻는 관광객이라니, 그 아저씨는 어리둥절하셨겠다.
'대릉원' 옆길이 황리단길이라 하여 또 걸었다.
전국의 '~리단길'이 대체 몇 개나 되려나.(되나마나 가져다 붙이는 이 몹쓸 유행)
반도 가지 않고 뒷골목 돌아서 나왔다.
조악한 인테리어와 개조를 한 어정쩡한 옛집과 골목길들, 두 번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쓸쓸한 사실을 저들은 알까.

이튿날은 불국사만 볼 계획이었다.
불국사로 올라가는 길목은 겹벚꽃이 한창이었다.
날씨는 더웠고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다녔다.
어디를 찍어도 사람을 피할 수가 없지만 그나마 가장자리가 좀 한갓져서 몇 장 찍었다.
어, 저 삼각대는 왜 있지? 하는 순간 삼각대의 주인이 쓰윽 내 화면에 들어왔다.
덥다곤 해도 여름까진 아닌데 한여름 원피스를 입고 천천히 걸어가는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그리곤 돌아가 삼각대에 장착된 휴대폰을 확인하는 걸 보니 혼자 동영상을 찍는 모양이었다.
앞모습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찍혀버린 귀여운 그녀, 그냥 사진 올린다.
불국사는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외국인 단체투어도 많고 홀로 여행하는 외국인도 많았다.
무지 복잡하고 정신이 없어서 대웅전이고 탑이고 찬찬히 봐 지지가 않았다.
부처님 오신날이 곧이라 연등을 많이 달았는데 아름답긴 해도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평일이 이런데 주말은 어떨지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집에 들어서니 고요함이 훅 다가온다.
깊고 무거운 고적함.
집 떠난 것은 천 년 전이 아닐까.
TV를 켜고, 보리차 주전자를 올려두고, 여행가방을 정리하였다.
※사족
여행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부대끼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정의됨.
인구가 줄고있는 거 맞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