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진정 좋은 것

愛야 2005. 8. 19. 14:56

 

그동안 시간없음을 핑계삼아 고전음악을 잘 듣지 못 했었다.

몇 번의 이사 끝에 오디오는 망가져 버렸고, 테잎과 CD는 듬성듬성 있어서 고루 갖추지를 못 했다.

옛날의 LP판은 수십 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지만, 바늘로 돌리는 오디오가 없으니 무용지물인 셈이다..

 

아, 정말 LP판을 돌리던 시절의 고전음악이 진짜였다는 기분이 든다....

앞 자켓 그림 또한 얼마나 멋졌었나.

DECCA , philips , 라이센스별로 모으느라  아까운 줄 모르고 용돈을 기꺼이 다 쓰고 나머진 궁하게 살곤 했다

 

클래식판 고작 5.60여 개, 문예월간지<현대문학> 이백여 권, 내 보물이다 싶어 결혼 때나 이사 때나 끙끙대며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 책은 더 이상 보관이 어려워 눈물을 머금고 폐기하였으나 레코드판은 그러지 못했다.

책만큼 공간도 차지하지 않았고, 하나하나 애써 구했던 것들이라  듣지는 않아도 버릴 수는 없었다.

멋진 판을 몇 개 골라 책꽂이 제일 위에 비스듬히 세워 두었다.

폰 카라얀의 사진도 옆에 둔다.

나름대로 장식이 되고 위안도 된다.

요즘의 CD는 음질이야 훨 좋겠지만  왠지 삭막하게 느껴진다.

추억도, 세월도 없는 듯하다.

 

어느날 들어가 본 음악사이트 벅스에서 클래식도 공급하기 시작했다.

악장들이 분리되어 있고 중구난방이긴 해도 잘 조합하면 꽤 들을 만한 곡들이 올라 있었다.

몇 시간의 노력끝에 좋아하는 곡으로만 클래식앨범을 하나 묶었다.

우선 심포니와 협주곡 위주로만 만들었고 다음엔 악기별 또는 소품곡, 오페라, 이런 식으로 만들어야겠다.   

컴맹인 내가 이런 짓도 하니, 얼마나 뿌듯하던지...

 

내가 앨범 만드니, 우리 아들이 괴로워 한다. 

지겹고 잠 온다나 어쩐다나.

어느 날은 너무 가슴에 사무치는 베토벤의 '에그먼트 서곡'을 듣다가 아들에게 말했다.

"너 아르바이트 해라"

"어, 뭔데?"

"이 곡 듣는 아르바이트. 다 들으면 천 원 준다"

우리 아들 사지를 비틀면서도 다 들었다.

이런 신선놀음 아르바이트가 어디 있다고, 참 웃기는 엄마다.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는다.

바이올린이 가파르게 몰아가는 굽이굽이, 가슴이 마구 덩달아 뛰고 내닫는다.

비 오는날에는 라흐마니노프를 차마 한 번만 듣질 못한다. 

억장이 무너진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들, 그러나 오래 잊고 살았던 것들을  하나 하나 다시 찾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