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개의 화분
결혼을 한 이후로 세 번의 이사를 하였다.
18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면 잦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혼 전 이사의 경험이 단 한 번이었던 것에 비하자면 빈번한 셈이 아닐 수 없었다.
결혼 후 내집마련 기회는 번번히 남편의 똥구멍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기 때문에 내 집에서 사는 가능성은 점점 멀어져 갔다.
긍정적으로 말을 하자면 그 무어냐, 이사다닐 수 있는 (참 감사도 하지, 어릴 때 내 소망을 어찌 알고...) 찬스가 떠억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원래 나는 물욕이 많은 편이다.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방 천장에 옷이며 신발이며 책이며 오락가락해서 결국 욕심에 굴복해버리곤 했다.
그런데 결혼 후의 나는 일단 시간을 가지고 버텨 본다.
속으론 사고 싶어 죽겠기에 부대끼는 물욕을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달랜다.
그 첫번째 핑계가 이사다.
이사할 때 짐을 어쩔려고...이사하다 보면 여기저기 망가질텐데 이담에 내집 장만하고 사지 뭐...
전세집에 맞추어 가구장만을 어찌하누...물건도 나이에 맞게 사야지 지금은 좀 어중간하지 않나...
온갖 핑계는 지혜라 하기엔 남루했다.
그러면서 한 술 더 떠 물건도 버리길 서슴지 않는다.
지난 번엔 찬장도 처리했고 오디오, 안 입는 옷, 가방, 수백 권의 <현대문학>, 장독...
장독은 친정으로 임시보관처리 하였는데, 더불어 화분도 하나 딸려 보냈다.
그 화분은 좀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라 잘 키워 달라고 당부하였다.
그것은 귤나무 화분이다.
아들이 태어났을 즈음, 제주도에 볼일이 있어 다녀온 남편이 아들 얻은 기념이라며 귤 묘목을 사왔었다.
나무는 너무 여리고 가늘어서 위태로와 보였다.
친정엄마가 물건도 지 닮은 것 고른다고 하셔서 하하 그렇네 하며 웃었었다.
좀 튼실한 놈으로 사 올 일이지 말이다.
그래도 죽지 않고 작은 열매를 맺기도 했는데, 이사 오며 화단 있는 아버지집에 맡긴 것이다.
나는 어찌된 사람인지 화분을 잘 키우지 못한다.
징크스와도 같다.
남들 하듯이 물 주고 햇볕 주고 하는데도 시들시들 죽어 버린다.
안 죽고 용케 버틴다 해도 남의 집 화분 한 뼘 자랄 동안 내 화분의 것은 한 마디 자란다.
나무에게 미안한 노릇이었다.
괜히 나에게로 와서 죽게 만든 것인가 싶어서다.
호야도 죽였고 난도 죽였고 분재도 죽였다.
뭐가 문젠지는 몰라도 이젠 화분 키우는게 두렵게 되었다.
결국 집에 푸른 것이라곤 모조리 없어진 재작년 늦가을, 너무 삭막하여 사람 사는 흉내를 내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나무라 불리는 포인세치아를 하나 샀다.
순전히 빨간 이파리 때문이었는데, 살 때는 분명 빨간 잎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새 하나씩 떨어지더니 정작 겨울이 되자 푸르른 잎사귀만 무성한게 아닌가.
그럼 그렇지, 내 손에 오면 무슨 사단이 나야지.
이제 너 말라 죽을 일만 남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또 우습다.
잎이 축 쳐져 있길래 마지막으로 물이나 한번 줘 볼까 하며 주르르 물 주고나니 이파리 꼿꼿이 들고 나 아직 살았네 하질 않은가.
죽어도 안 아까워, 빨간 잎으로 먼저 배반 때린 건 너야 했더니 2년이 된 아직까지 시퍼렇게 살아 있다.
죽고 사는 건 절대 누구의 맘대로 되는게 아님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집 단 하나가 된 화분은 뻔뻔하게도 그 후 빨간 이파리를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에게 위탁했던 귤나무가 겨울에 얼어 죽어 가슴이 아팠었다.
요즘 사려고 벼르고 있는 산세베리아의 가장 큰 덕목은, 음이온 발생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물주면 된다는 것,
가꾸는 솜씨따위 필요치 않는 대범한 나무라는 것이다.
정말 나에게 딱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