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지난 주말에는 엄마의 생신이어서 친정엘 갔어.
아직 진짜 생신날은 아니지만 자식들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앞당겨진 거야.
지지난 주에 이어 이번 일요일까지 밖으로 나다녔더니 몸살이 나나 봐.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뜨끔거리며 아파.
콧김은 뜨겁고 온몸이 다 뜨듯해.
난 체온이 낮은 편이라 이 정도는 고열로 보아야 해.
그래서 오늘은 일을 쉬기로 하고 약속을 둘이나 뒤로 미루었어.
열이 나서 내 정신이 혼미했나, 친구에게 전화하고 싶어졌어.
그래서 전화했지.
밝은 목소리가, 난 아무 탈없이 잘도 살고 있네, 라고 말하는 듯했지.
지난 밤 꿈에 친구가 등장했다고 내가 말했던가.
우리들은 모두 지금보다 10년쯤 젊은 모습이었어.
친구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 교수님도 있었어.
거 왜, 임신 11개월 배를 가지신 S교수님말이야.
동창회 관련 우편물을 받은 날이라 그런 꿈을 꾸었을까.
꿈에서 친구는 나를 엄청 배반했어.
깨고 나서도 분해서 가슴이 다 싸아했어.
꿈이지만 용서 안 하기로 했어.
한동안 삐쳐있기로 마음먹었어.
하지만 곧 이 마음을 잊어버리고 만나면 히히덕거리며 웃을 거라는 거 나도 알어.
그래도 이렇게 앙심이라도 먹어 보아야 될 것 같아.
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라고 묻지는 말어.
자존심 상해서 말 못해.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렀어.
아들 몫으로 과학잡지 10월호와 최인호의 "유림"을 샀어.
벼르던 책이야.
사실 역사소설은 그것이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되었든 말든 별로 흥미없어.
드라마도 역사드라마는 거의 안 봐.
지나간 것과 그것이 정형화된 거라면 관심이 안 가.
그 시절을 누가 살아봤단 말이야.
모두가 몇 줄 기록에 엄청난 살과 추리를 붙인 기형일 뿐 아니겠어.
왜곡 아닌 역사소설이 어디 있겠냐고.
그럴바엔 차라리 현실적 허구가 더 진실한 것이야.
유일하게 읽은 역사소설은 유주현의 "대원군"이었어.
중학교 3학년 여름이었지.
유주현 작가의 힘 있고도 섬세한 심리묘사에 감동했던 기억이 나.
역사소설을 싫어하지만 이번엔 한번 읽어 보려고 해.
작가를 믿어서야.
최인호의 초기 작품들은 잘 아다시피 반짝이고 감각적이긴 하나 깊은 맛은 없었잖아.
하지만 세월은 그의 머리에 흰 서리도 주었고 철학도 뿌리내리게 해 주었어.
그는 천재야, 천재라고 하고 싶어.
그렇지 않다면 이 소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
내가 돌아오는 사이 친구는 내 블로그에 다녀 갔네그랴.
나 이러고 놀고 있어.
인터넷에 중독될 만큼 나의 소프트웨어가 순수하진 않아.
그러나 재미는 있어.
친구의 비공개 안부에 대한 답변을 이렇게 글로 쓸 만큼 말이야.
생각이 글자화 되는 순간, 진실과의 괴리는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며 읽기 바래.
지혜로운 방문객은 표출 이면의 묻혀진 상념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을 거라 믿어.
인터넷공간이 친구보다 편하냐고?
그래도 아직은 현실친구들이 더 좋아.
특히 오랜 친구가.
으....모든 말이 그저 몸살기운 탓인듯 해....다음 상봉까지 잘 지내. 좋은 계절이야.
200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