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일 뉴스에 등장하는 것이 쇼트트랙 선수들 다음으로 성폭행범이다. 얼마 전 발바린가 강쉐인가 하는 날고 기는 성폭행범이 10년만에 검거된 이 후 속속 갑자기 유사범죄의 검거성적이 좋아지고 있으니, 이걸 좋아해야 하나 개탄해야 하나 잘 모르겠는 심정이다.
오늘도 석방된 지 일 주일만에 다시 검거된 사람(이 맞나?)이 파카를 뒤집어 쓰고 연행되는 장면이 9시 뉴스에 나온다. 참 부지런도 한 인간이다. 스물 몇 건인가 저지르고 큰집을 다녀오셨는데 아마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나 보다. 성범죄자들의 남은 일생을 관리하는 전자팔찌 운용문제도 화두로 등장한다. 미래 SF영화에서나 등장하던 개목걸이 내지는 전자팔찌라 여겼는데, 역시 공상영화는 언젠가 현실화되는 모양이다.
작년 여름이었다. 비 오는 퇴근 무렵의 버스 속이란 얼마나 복잡한가. 더구나 각자 빗물 뚝뚝 떨어지는 우산까지 들었으니 사람들끼리 이리저리 부딪히는 건 예사로운 일이었다. 냉방이 잘 되어 덥지는 않았으나 여름 우기 특유의 습함과 끈적임이 불쾌지수를 올려주는 날이였다.
유난히 여름을 타는 탓에 기진맥진한 나는 손잡이를 잡고 무심히 창 밖만 바라 보고 있었다. 차가 움직일 때 옆 사람이 너무 바싹 다가서는 듯한 느낌에 민감하게 고개를 휙 돌려 보았다.
남자 하나가 서 있다. 그와 나의 사이에는 내 팔에 걸쳐진 커다란 가방이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내 가방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바싹 다가선 느낌 5분 후, 쭉 그어진 비싼 나의 가방을 발견하고 기막혔던 경험이 한 번 있었던 것이다. 흠...책과 돈 안되는 것들로 가득한 가방을 한번 면도날로 그어 보실려고? 이런 눈초리로 째리자 남자는 소매치기를 포기하고 슬며시 시선을 내리더니 몸을 돌려 다른 쪽을 보고 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잠시후 나는 어이없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이 남자는 한 아줌마의 등 뒤에 바싹 다가서 있었는데, 자신의 바지춤 속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 상태였고 표정은 한창 구름을 밟는 중이었다.
그는 내가 생각한 소매치기가 아니라 말로만 듣던 성추행범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대상이 되고 있는 아줌마가 전화로 수다를 떠시느라 등 뒤의 범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빛의 속도로 갈등을 하였다.
"이걸 소리쳐 알려? 말어? 괜히 남의 일에 나만 민망해 지는 거 아냐? 말해줄까? 저 아지매는 왜 저리 둔한거야? 내 일도 아닌데 모른 척하고 가다 보면 내리겠지? 어어, 저 자슥 표정 좀 봐라."
그러나 이 많은 생각이 지나가는 데는 1초 밖에 안 걸렸을 것이다. 망설이는 순간, 다행스럽게도 나는 버스를 울리는 한 여자의 쇠된 소리를 들었다.
"아저씨 !! 지금 거기서 뭐하는 겁니까? 아줌마는 전화 고만 하고 정신 좀 채리시고요"
아니, 이런 불가사의한 일이 있을까...그건 바로 내 목소리였다 ! 아직 갈등의 결론이 안 내려졌는데, 소리쳐 알려주라고 뇌에서 아직 명령신호를 내리지도 않았는데, 우째 이런 일이...마음먹지도 않은 내 목소리를 갑자기 내 귀로 듣는 이상한 경험,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경험을 나는 하였던 것이다.
남자는 마치 자신이 아닌 듯 무심을 가장하려 했으나, 정신을 차린 아줌마도 옴마야, 하며 돌아보고 호들갑을 떨어 이미 온 버스 안 이목의 집중을 받는 형편이었다. 마침 정류소에 버스가 다다라 문이 열리자 남자는 황황이 내려 아무렇지 않은 모양새로 평범히 걸어갔다. 아, 오늘은 재수없는 날이다, 처음부터 일이 잘 안풀어지더니 ,역시 아줌마는 무섭다라고 생각할까?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랬다.
버스 안은 다시 조용해졌고 어색한 침묵이 승객들 사이에 돌았다. 승객들은 잠시 전의 상황들을 머릿속에서 각자 되감기하고 있었던 듯 곧 여기저기서 흐흐흐 웃기 시작했다. 흐물흐물해진 분위기를 비집고 늙수그레한 영감이 나에게 아주 호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그 남자가 우째 하고 있었능교?"
에라이, 너도 꼭 같은 족속이다. 그거 알아서 뭐 할래...내 경멸을 읽은 영감은 입을 그만 다물고 말았다.
그날 저녁, 나는 내내 웃었다. 자다가도 웃었다. 웃어서 안 될 사회적 병폐인데도 웃었다. 평소에 그런 일에 선듯 나서지 못하는 비겁함 내지 소극적 참여태도를 가진 나이기에 더욱 웃었다. 크크크 으흐흐 갤갤 각종 소리로 웃었다. 성희롱 당한 아줌마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웃었다. 내 목소리를 남의 것처럼 객관적으로 듣는 기이함. 머릿속으로는 결심이 채 서지도 않았는데 머리를 배반하고 어느새 내질러진 목소리를 대체 웃지 않고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내 행동은 반사적 대응이었다. 폭발하듯이, 다소 감정적이긴 했으나 그런 즉각적 대응 외엔 달리 해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 많은 여성 (또는 남성일 수도 있다)들이 입은 성적 수치심 내지는 상처들이 여성들에게 간접적 경험치로 쌓여 있다가 그런 상황을 목격하는 순간, 이성이란 제어장치를 풀고 터뜨려지는 것 아닐까.
물론 버스 안이라는 안전지대였으니 가능했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다. 만약 내 안전이 먼저 위협받는 장소였더라도 그처럼 용감했을까. 부끄럽게도 내 결심이 서지 않았었다는 것은 비겁함의 증거로 충분하다. 비겁하게 머뭇대다가 앞뒤 생각없이 왈칵 소리치는 게 다인 처신이었다. 반성할 대목이다.
우리의 비겁함 내지 방관에는 성범죄에 너그러운 한국식 사고도 문제이며, 법적 구속력을 가지기엔 성범죄처럼 모호한 것도 없다는 여러 판례들이 한몫 하기도 한다. 나의 고함에 대해 그 남자가 아주 멀쩡한 얼굴로 이 아줌마가 생사람 잡네, 증거 있어? 하면 나는 그만 무모하고 엉성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고발자의 함정이다.
좀 더 지혜롭고 이성적인 확고한 처신이 필요한 시대이다. 올곧은 이성은 봐 주는 법이 없다. 감정처럼 슬쩍 넘어가 주지도 쉽게 용서하지도 않는다. 전체 사회가 나서서 그래야 할 시대가 이젠 되었다. 연일 보도되는 뉴스를 보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어디 있는가.
다만 그것이 전자팔찌든 뭐든, 피해자나 잠정적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본다. 성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고, 범죄가 증명되기 전에는 범인 취급을 해선 안 된다는 정답을 떠나, 성범죄를 저지른 인간은 자신도 여성의 아들이라는 존엄함을 버린, 치사한 인간 중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발발이라는 범인이 성폭행을 저지르는 한편 피해자들에게서 약탈한 것으로 추정되는 약 1억의 거금을 은닉해 두었다는, 치사함의 극치인 기사를 보았을 때, 법보다는 가위가 먼저이기를 바란 나는 물론 감정적이었지만, 그래서 지나치는가?
어느 블로그에 갔다가 아동 성희롱에 대한 글을 보았다. 아동 성희롱자는 따로 추려내서 100세 이상의 장수마을로 평생 극기훈련을 보내길 바란다. 아니면 두 말 할 것 없이 형장으로 가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