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언니
주말에 친정에 갔었다.
간 걸음에 가까이 사는 언니에게 안부전화를 해 보니, 목소리가 아픈 듯하였다.
"어디가 아프나?"
"응, 허리를 좀 삐끗했는데 꼼짝을 못하고 누웠다야."
"병원에 갔었나?"
"아니, 오늘 일요일이라 내일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갈라 한다. 내 허리병 고질병 아이가. 아부지한테는 말하지 마라. 괜히 걱정만 하신다"
삼남매 중에서 첫째이자 나의 유일한 자매인 언니다.
형부를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 살아온 지 20여 년이다.
형부는 언니와 결혼하여 10년을 살다 떠났고 그 배의 세월을 언니는 혼자 지낸다.
죽은 남편을 못 잊어서가 아니다.
처음에는 어린 남매를 키우기 위해서였고, 애들이 다 자란 지금은 혼자에 익숙해져서일 뿐이다.
언니는 죽은 형부를 그리워나 할까.
꿈이라도 꿀까.
이젠 얼굴마저도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들도 사랑해서 결혼하였다.
충청도 양반인 형부가 남도의 처녀를 만나, 그 어눌한 양반도 사랑의 정열에 불타서 결혼을 했다.
언니가 스물 다섯, 형부는 스물 아홉 가을이었다.
형부는 소위 S대 출신의 선량하고 생각이 올바른, 무던한 충청도 청년이었다.
너무 털털한 나머지 머리도 빗지 않고 출근하는 형부를 언니가 빗을 들고 현관까지 쫓아나가 빗겨서 보내곤 했다.
형부가 근무하는 회사마다 부도가 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동안 직장을 얻지 못해 힘들어 하였다.
형부의 학벌도 큰 도움이 안 되었고 친구나 선배들에게 취직을 부탁하며 마음의 상처도 받았을 것이다.
조직사회에서 정글의 법칙은 올곧은 형부에겐 실천 불가능한 체세였다.
그렇다 해도 술을 그리 마셔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회사나 사회의 부조리가 아무리 정의감을 건드린다 해도 그동안 고생시킨 마누라와 자식새끼를 생각하면 술로 그 울분을 풀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언니네를 방문하였던 어느 겨울방학, 인천에는 눈이 엄청 내렸었다.
형부가 퇴근 후 회식을 한다고 알려왔을 때 언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남편이 술 먹고 들어오는 것을 반길 여자는 없을 것이기에 나는 예사로 여겼다.
늦은 밤 술 취한 형부가 돌아오는 기척에 언니는 두 아이를 안고 구석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절대로 아는 척 말아라. 아무리 찾아도 여기 있다고 내색하면 안 돼.
형부는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고 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술이 부족한 듯 몇 차례나 들락거리며 더 마셨고 드디어 인사불성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몹시 화가 나 불만을 터뜨리고, 탁자 유리판은 현관 바닥에서 박살이 났다.
말리는 처제도 알아보지 못하고 뺨을 후려쳤다.
처제가 아니라 용서하기 싫은 누군가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형부의 술주정과 언니의 외로움을 알아버렸다.
그 놀라움과 충격을 어찌 표현할 것인가.
술을 좋아하는 정도를 이미 넘어서서 차라리 형부는 괴로움으로 고통스러워 보였다.
형부가 지쳐 잠든 후 언니와 마주앉은 작은방에서 우린 절망했었던가.
"술 먹고 그냥 자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설치면서 술을 깬다. 아니면 지칠 때까지 저러든지.난 니 형부가 퇴근시간에 안 오면 불안으로 혼이 다 나간다. 차라리 어디서 자고 담날 왔으면 싶다. 통금사이렌이 불면 얼마나 안도가 되는지. 법 없이도 살 평소의 형부를 너도 알잖아, 나쁜 사람이기나 하면 포기나 하지. 그래도 손찌검은 안 하니 양반은 양반이다."
이튿날 날이 밝자 나는 언니집을 떠났다.
술에서 깬 형부의 얼굴을 절대로 보고싶지 않았다.
지난 밤 전쟁을 치른 집에 언니와 어린 조카들을 두고 오려니 마음이 찢어질 듯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 당장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떠나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담을 돌아 나오는데 부엌 뒷문을 열고 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가는 내 모습을 한 번 더 보기 위해서였다.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나와 언니는 눈으로 다시 작별을 하였다.
막내동생을 그리 보내야 하는 슬픈 얼굴이라니, 퉁퉁 부은 언니의 얼굴은 스틸사진이 되어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흰 눈 쌓여 더 슬펐던 겨울길도.
나는 그 겨울을 잊을 수가 없다.
형부가 죽은 가을보다, 울고 있는 언니를 부엌문 앞에 두고 왔던 그 겨울을 잊을 수 없다.
분노로 흰 눈을 힘주어 밟으며 눈앞이 흐려져 도무지 걸을 수가 없었던 그 겨울을 잊을 수 없다.
형부는 몇 년 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사랑.
그것이 있기나 할까.
절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서른 다섯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을 이 세상에 남겨두고 가버린 그에게 사랑이 대체 무엇이었을까.
벼락맞은 듯 혼자되어 억척스레 살아내느라, 말랑한 정서따윈 배부른 헛소리쯤으로 치부하게 된 왕년의 문학도 언니에게 그의 사랑이 남긴 게 무엇인가.
다섯 살 아들이 아버지 없이 자라 스물 여섯의 청년이 되기까지, 열 살 딸이 서른한 살 노처녀가 되어 시집가기 싫다 하기까지 그의 사랑이 남긴 게 무엇인가.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아내와 자식을 슬프게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을 아꼈어야 했다.
가족의 염려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함께 오랫동안 사랑을 서로 누려야 했다.
아파 끙끙거려도 병원으로 들쳐업고 가 주는 사람 없는 쓸쓸한 삶을 맞이하게 해선 안 되었다,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사랑한다는 말만으로 사랑이 되는 것인가..
단 한 가지 술을 빼면 아무 것도 탓할 거리가 없었던 순수한 사람.
짧은 생애에서 그래도 가장 사랑했던 존재는 아내와 자식이었으리라 믿고 싶다.
언니는 뜨거운 전기요에 누워 허리를 지지고 있었다.
곁에 있던 메롱이가 나를 향해 으르릉댄다.
머리 나쁜 강아지인지 볼 때마다 난리다.
"아이고, 누워있을 수만은 없는데, 큰일이다."
"내일 꼭 병원에 가라 언니야, 뜨거운 찜질하고."
"알았다, 너 반건조 가자미 가져 가라. 꽁치도 몇 마리 줄 테니 굵은 소금 뿌려 구워라. 좀 부지런히 해 먹고 살아라, 인간아."
언니는 뭐 더 챙겨줄 게 없나 살핀다.
"아 참, 이 화장품 가져가 써라. 뭐라고? 비싼 거니까 너 주지. 난 한 통씩 더 있다."
사랑이 있는 모양이다.
67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