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이 아니었으나 보름인
다시 아침이다.
월요일 아침이다.
아직 하루도 줄어들지 않은 일주일이 통째로 내 앞에 놓여 있으니 마음이 갑갑하다.
커피물을 올리고 물이 끓는 사이 빨래를 모아 세탁기를 작동시킨다.
두 가지 일의 동시 처리.
컴퓨터를 부팅시키고, 부팅되는 동안 끓어오른 물로 커피를 만든다.
급한 일도 없다.
커피물 끓는 앞을 우두커니 지키거나 컴퓨터 앞에서 가동되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지루했을 뿐이다.
어제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버스를 달이 따라 왔다.
기움없이 동그랗고 노란 큰 달이 버스 차창 밖을 따라 붙었다.
네온 요란한 거리에서 보름달은 생경한 거짓말 같았다.
혼자 고요히 어두운 하늘에 떠 있었다.
갑자기 가슴팍 어딘가의 경계선이 흐릿해졌다.
달밤에 반응하는 늑대 인간으로 변하려는 전초전인가?
친구에게 전화로 천기를 누설해 주었다.
오늘이 보름임에 분명해, 밤하늘과 달을 좀 봐라.
보름달을 계속 눈으로 쫓으며 골목길 걸어 집으로 왔다.
아들이 치킨과 콜라를 시켰다.
나는 콜라에 소주를 타서 마셨다.
내 집 창 밖에까지 따라 온 오늘의 보름달, 그에 대한 대접이다.
지난밤에는 꿈을 꾸었다.
복잡하고 애절한 꿈을 밤새도록 꾸었다.
6시 30분, 머리맡 알람소리가 잠 속으로 질기게 들어온 순간 꿈은 간단히 밀려났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현실을 이기는 건 없다.
그토록 바삐 만든 커피를 들고 우두커니 앉았다.
급한 일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간밤의 꿈도 내 가슴 속에 한 조각도 새겨져 있지 않으니 곰곰 생각할 거리는 없다.
참, 어제의 달은 어찌 되었나.
달력을 비로소 본다.
어제는 보름이 아니었다.... 그러니 보름달도 아니었다.
그저께 토요일이 보름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보름날보다 다음날이 더 둥글다는 거 진작 알았다.
하지만 어젯밤 그리 둥근 달을 그럼 뭐라고 부를 것인가.
여전히 보름달이다.
그렇지 않다면 간에서 이미 사라진 축배의 알콜을 게워낼 방법이 없으므로.
미지근히 식은 커피를 속으로 흘려 보낸다.
뒤섞였던 온갖 내장들이 다시 제자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