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봄
갑자기 주변 모든 말과 소식과 글들이 사납게 나를 조여온다.
사립대들이 수능에 비중 두겠노라 했다.
3불 정책을 없애라는 서울대의 요구는 급기야 사립대로 번지며
우리 나라 대학 교육은 국제적으로 뒤떨어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교육부는 징징 울며 자제를 애원하는 담화를 발표한다.
밀치고 당기고 서로 겨룬다.
학생들과 부모들은 도대체 우린 마루타냐고 와글바글이다.
대권주자들은 이리저리 물어뜯기와 독립하기를 가늠한다.
검증안 된 사람이 또다른 검증 안 된 사람을 검증하느라 추적 60분이 바쁘다.
뇌물을 챙겨 담는 장면을 백 번 보여줘 봐야 배고픈 백성들은 그 돈다발에만 눈이 갈 뿐,
다 똑같은 넘이여 한 마디로 끝낸다.
수십 년 같은 저게 뭔 뉴스여.
아들은 내일까지 봉사활동 계획서를 내야 한다고 학교에서 수차례 문자를 날린다.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봉사활동 관련기관 목록을 열어 봉사활동 하러 가겠다는 허락을 좀 받아달란다.
밖에서 일을 하는 나에게 전화와 문자로 재촉하고 볶는다.
또 손전화가 붕하고 문자가 뜬다.
언제가 학원비 내는 날이라고 친절히 예고편 한다.
유선방송비와 카드결제 예고도 날아온다.
더럽게 친절하다.
기한이 정해진 독촉은 늘 극도의 압박감을 준다.
북한은 돈 안 돌려준다고 눈을 부라리고
한미무역협정 그만 두라고 국회의원들이 뭉쳐 갑자기 국민을 위하는 사람들로 돌변한다.
어젠 광속구를 자랑하던 왕년의 야구선수가 해운대에서 교통사고로 즉사했다.
우리 동네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에 초등학생이 거꾸로 매달려 40분을 견디다 구조된다.
날 들볶지 마.
양쪽에서 조여오는 틀이나 점점 내려앉는 천정을 보는 듯해.
어드벤처 스릴러 영화란 말이지.
세상이 온통 사건사고이고 배반과 투쟁이네.
너무 고단해.
얼마나 할 애기가 없으면 목도리녀라는 웃기는 타이틀이 2박 3일 언론을 타네.
날 제발 들볶지 마.
들볶이면 무엇이든 단단하고 딱딱해져.
불쌍한 사람이 점점 없어져 가는 걸 보면 난 이미 단단하고 딱딱해.
느리고 평화로운 시간 속에 나를 내맡기고 싶어.
그럼 삼투압으로 나의 세포가 다시 흐물흐물 풀어질 거야.
봄꽃도 작년만큼 이쁘진 않아.
대체 나는 어디쯤에서 나를 팽개친 거야?
내일은 심인광고를 낼까 봐.
사진도 올릴까.
이 여자를 아시나요, 보시거나 보호하고 계신 분은 절대로 돌려보내지 말아 주세요.
그냥 그 시간 속에 곱게 데리고 있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