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기

한 盞짜리 문학

愛야 2008. 1. 12. 00:59

 
아주 가끔이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울컥 치밀 때가 있다. 대개 한 잔의 술이 세포막을 뚫고 막 피돌기를 시작할 때다. 하지만 쓰고 싶다는 욕구만 치밀 뿐 정작 뭘 써야 할지는 모른다. 누추한 일상의 스케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망설이는 사이 한 잔의 술은 갈증만을 준 후 천천히 분해되어 버린다. 알콜의 효력은 거기까지, 그리곤 끝이다.

 

나는 무엇을 쓰고 싶나. 자서전이 아닌 다음에야 지나온 일생이 대상일 필요는 없다. 욕구만 주고 재능은 주지 않은 신을 원망한 저 살리에르의 열정이 나에게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씩 글을 아주 잘 쓰고 싶어진다. 나는 동화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읽지 않기야 했을까마는 특별한 감동의 기억이 없다. 아버지의 유리문 달린 책꽂이엔 동화책 아닌 소설과 백과사전과 현대문학지가 빼곡했다. 나는 동화책보다 소설을 읽었다. 아무 의미도 모르고 5학년 때 파우스트를, 6학년 때 이광수를 탐독했다. 현대문학지를 호수 맞춰 밤새워 읽었다. 부모님 몰래 읽다가 들켜 꾸중도 들었다. 나는 조숙했다.

 

중학교에 가서 첫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탔다. 입상자 중 1학년 꼬마는 내가 유일했다. 그러자 문예반 선생님이 나를 불러 문예반에 집어넣었다. 이리저리 백일장에 불려다녔고 입상을 하면 으쓱해지곤 했다. 내가 읽은 아버지 서재의 소설과 시가 거름이 되어 또래 친구들보다 글을 잘 구성했다. 허구적인 살도 잘 가져다 붙였다. 수필문이 아닌 꽁트 같은 산문도 썼다. 시도 가끔 썼지만 시보다는 산문이 좋았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나는 그 모든 글쓰기가 참으로 유치하다고 생각되었다. 문인의 분위기를 풍기고 싶어하는 문예반 친구나 선배들의 모습도 같잖았다. 이때부터 나는 좀 삐딱했던 모양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게 뭐 대단한 우월감을 주는지, 누구나 남보다 잘하는 한 부분은 있기 마련이 아니던가.(지금도 스스로 문학가연 하는 사람들에게 알러지가 있다) 나는 문예반도 거부하였고 글쓰기에서 뚝 떨어져 나왔다. 

 

나에겐 글을 씀으로써 얻는 괴로움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진 않다. 엄밀하게는 글이 아니라 글을 씀으로써 따라오는  타인의 관심이 고통이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예민한 여자아이에겐 이 세상 아무도 이해 못할 혼자만의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가여움에 지금도 목울대가 아프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나는 좀 자유로워졌다. 고해하듯이 습작 노트를 하나 장만하였다. 비로소 남몰래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곧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도무지 써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내가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미 똥구멍에서 실 나오듯 줄줄 써지는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이제 한낱 환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거미 똥구멍은 굳어져서 내 가슴을 배반하였다. 억지로 쓴 글을 덮어두었다 읽어보면 중학생 글쓰기 실력에서 그대로 정지해 버린 듯했다. 감정만 앞서고 객관적 서술은 실종되었다. 글에는 암호같이 모호한 표현만 가득했다. 뭘 전달하려는지도 불분명한, 초보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세월은 그렇게 자만심 가득했던 나를 보기 좋게 갈겨버린 것이다.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포기하였다. 포기란 가장 쉬운 방법이였다. 하하, 늘 그랬듯이 말이다. 그려, 내가 뭔 대단한 재능이 있간디.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러 나는 어느 여름날 더듬더듬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서투른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아무런 낙이 없었고, 더 미루었다가는 정녕 잊을 것 같았다. 고작 나는 내 상처와 세월의 꼬랑지에 매달렸던 것이다.

쓰면 쓸수록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글에 대한 욕구가 살아남을 느꼈다. 울컥 치솟는 충동의 진원지는 늑골 언저리이다. 옛날처럼 머리 속이 아니기 때문에 그 충동은 이제 자연스럽다. 블로그에서나마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어디에서 세상을 잊을 수 있었을까. 또는 세상을 만날 수 있었을까. 가끔 이렇게 생각해 본다. 만일 끊임 없이 글을 썼더라면 나는 어느 지점쯤에 있을까. 그래도 여기일까...

 

오늘? 그렇다. 오늘도 한 盞짜리의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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