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기

핑계

愛야 2014. 8. 16. 01:23

              심노숭 <눈물이란 무엇인가>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심장)에 있는 것인가?
눈에 있다면 마치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는 듯 한 것인가?

마음에 있다면 마치 피가 맥을 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인가?
눈에 있지 않다면, 눈물이 나오는 것은 다른 신체 부위와는 무관하게 오직 눈만이 주관하니 눈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있지 않다면, 마음이 움직임 없이 눈 그자체로 눈물이 나오는 일은 없으니 마음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만약 마치 오줌이 방광으로부터 그곳으로 나오는 것처럼 눈물이 마음으로부터 눈으로 나온다면 저것은 다 같은 물의 유로써 아래로 흐른다는 성질을 잃지 않고 있으되 왜 유독 눈물 만은 그렇지 않은가?

마음은 아래에 있고 눈은 위에 있는데 어찌 물인데도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이치가 있단 말인가!
한번은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마음은 비유하자면 땅이고 눈은 구름이다.

눈물은 그 사이에 있으니 비유하자면 비와 같다.

비는 구름에 있지도 않고 땅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비는 구름에서 생기고 땅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늘 위에는 늘 비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비는 땅에서 생기고 구름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비는 어째서 하늘로부터 내린단 말 인가?
이는 기氣의 감응에 불과할 따름인즉, 눈물은 마음으로부터 나오고 또 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무릇 감응한다는 것은 사람과 신神 사이가 멀어도 서로 통할 수 있어 제사를 드리면 선조들 은 오므로 옛사람들은 다 성실하고 돈독히 제사를 드렸다.

까다득한 후손이 먼 조상을 제사지냄에 어렴풋하고 숙연한 사이에 눈물까지 나오지는 않으나, 또한 눈물이 나올 듯한 마음도 아주 없지 않아 눈물을 쏟는 이도 볼수 있을 듯했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인심이 박해지자 어떤 이는 상을 당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니, 하물며 상을 지나 슬픔이 줄어든 제사에 있어서랴!
제사를 드릴 때 곡만 하고 눈물이 없는 것은 이미 느꺼움이 없는 것인데 어찌 신의 응함이 있으리오?
입으로는 울짖으나 마음속으론 기뻐한다면, 다른 사람이 그 진실되지 않음만을 볼 뿐이니 그 신이 다다르는 것은 말해 무엇하리오!
내게 상사喪事가 생겨 초빈草殯으로부터 계속 묘를 지킴에 어떤 때는 한 번 곡하고도 눈물이 나다가 어떤 때는 천백 번 곡해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 자리에서 곡함에 어찌 슬프지 않아 눈물이 안 나오는 것이겠으며, 자리에 있지 않아 곡하지 않음에도 문득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니 신과 인간 사이의 이치는 진실로 아득하나 느꺼움도 없는데 응함이 있거나, 느꺼움이 있는데 응함이 없는 그런 일은 없다.
여기의 느꺼움으로 저기의 응함을 알 수 있은즉 다만 잠자리에 들고 음식을 먹을 때에만 서로 통하는 게 아니다.
천 리를 떨어지고, 여러 해를 지나 즐거운 마음으로 거문고·피리가 가득한 자리에 있을 때, 일 처리를 하느라 문건이 책상 위에 수북할 때, 술을 마셔 내 몸을 잊을 때, 바둑·장기로 뜻을 부칠 때 이 모든 경우는 다 눈물과 관계없지만 무언가에 저촉됨이 있으면 느꺼움이 있 게 된다.
느꺼움은 눈물과 도모하는 건 아니지만 눈물은 느꺼움을 따라 나오니 신이 응하게 되는 것은 향을 사르고 처연해지는 제사 때에만 그러는 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자리와 자리 아님, 곡함과 곡하지 않음을 또한 논해 무엇하리오!

내가 이런 까닭에 제사에 임해 곡하여 눈물은 흘리면 제를 지냈다고 여겼고 그렇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여겼으며, 때때로 느꺼움이 있어 눈물이 나면 신이 내 곁 에 왔구나라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황천길이 멀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에 「누원淚原」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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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없었다.

공원 산책 내내 밤바람도 적당히 상쾌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노래를 들으며 두 바퀴 돈 뒤에 집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래, 그때부터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난 것은.

꼭 참았다.

그래도 눈물이 났다. 

눈곱 훔치는 척하며 닦았다.

그래도 눈물은 염치없었다.

집에 얼른 올라가야겠다.

터질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틀어쥐고 있던 울음보를 놓아주었다.

울었다.

참지 않았다.

소리 죽이지 않았다.

엉 울면서 옷을 벗고 양말을 벗었다.

대놓고 울기 위해 자리에 대자로 몸을 던졌다.

베개에 머리통을 파묻었다.

꺽꺽 목이 메었다.

 

울면서 나는 우는 내가 의아했다. 

가까운 주변 아무도 죽지 않았고 사고도 없었다.

아들놈은 여자친구와 일주일 만에 재결성하여 나의 연민을 벗어났고, 부모님 또한 별일 없었다.

나 역시 새롭게 발견된 성인병도 없으며, 몸무게는 늘지도 줄지도 않았고, 그간 쉬었던 일을 조금씩 다시 시작하였다. 그런데 왜 소리 내어 울고 있는가.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집으로 뛰어 올라와야 했는가.   

 

몇 해 전, 내가 읽었던 저 짧은 글의 충격을 기억했다.

<눈물이란 무엇인가>

흔하게 흘렸던 눈물이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왔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랬기에, 눈물이란 무엇이냐고 들이대는 첫 문장에서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하였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격렬한 나의 울음은 느꺼움에 대한 응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떤 느꺼움에서 연유한 것인가.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느꺼움을 터뜨린 발화의 꼬투리는 또한 무엇이었나.

 

느꺼움의 정체를 물론 나는 안다.

꼬투리 또한 안다.

나의 발화점은 그의 노래 어느 지점이다.

100번을 반복해도 그렇다.

슬픈 세상에서는 차마 듣지 말아야 하는 노래라고 나는 결정지었다.

사소하나 예민한 접점을 만나지 않아야 한다.

 

온 힘을 다해 우느라 땀이 뻘뻘 났다.

공원 산책 중에도 안 났던 땀이 말이다.

나는 일어나 앉았다.

울음을 그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가만히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둠 뿐이었다.

아직 눈꼬리에는 눈물이 달려 있는데, 더 이상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영혼이 빠져 나가 저만치 굴러가 있었다.

쓸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