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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묘지

by 愛야 2007.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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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집 근처 UN묘지 풍경을 철책 바깥에서 찍은 적이 있어요. 묘지는 일반 공원과 담을 같이 하고 있어요. 바깥 공원을 돌며 안쪽을 보니 꼭 저 안쪽으로 가 봐야지 싶더라구요. 참 티끌만큼도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게 잘 안되더군요.

 

일요일 오후 3시쯤, 음식물 쓰레기 말린 것과 쓰레기 봉투 5리터짜리를 들고 현관을 나섰지요. 파라솔은 잃어버렸으니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단단히 신습니다. 아들이 쓰레기 버리러 가는 복장치곤 과한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지상으로 내려간 김에 동네를 산책하고 오겠다고 했어요. 점심 먹은 것이 소화되지 않고 더부룩하더라구요. 요즘은 조금 먹어도 배가 오랫동안 불러 있다가 그대로 뱃살로 정착합니다. 일요일은 되도록 움직이지 않는 생활 리듬을 깨고 묘지에 간 것도 그래서였답니다.

 

1959년에 조성된 유엔 묘지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들의 묘지입니다. 유엔 산하의 합동 묘지로는 전세계 유일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자국 전사자가 있는 국가 원수들이 부산을 방문하는 경우엔 이 묘지에 들러 고개를 숙이곤 합니다. 많은 사연들도 어찌 없겠습니까.

 

토요일의 광안리 불꽃놀이는 불꽃처럼 지나갔어요. 하늘은 불꽃으로 소독이 말끔하게 되어 참 푸르고 맑았어요. 날씨도 따뜻하고 바람도 적당합니다. 오후의 묘지는 너무나 고요합니다. 한들한들 걸어 갑니다. 코스모스 여인이 아니지만요 잠시 그래 보는 겁니다.

 

                                                                           

 

 

사실 이런 기념비적인 풍경이야 어디든 비슷합니다. 잔디와 각 묘지 옆 장미꽃 몇 송이는 잘 손질이 되어 있어요. 반듯반듯 이발시켜 놓은 관목이 마치 두부모를 보는 듯합니다. 이것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이 일로 일자리를 얻었으니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먹이고 있다, 뭐 그런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몇 십 년째 누워있는 이방인들에 대해 별 감흥은 없었어요.

 

 

 

 

묘지에는 묘 외 다른 볼 거리가 없는 게 당연합니다만 묘지가 생긴 이래 너무 돈을 안 들인 것을 반성하는 의미로 작년에 이 추모 명비를 세웠답니다. 흠, 나라별 통계를...한 명이든 몇 만 명이든 개개인의 입장에선 하나밖에 없던 목숨을 잃었는데 현황 통계는 무슨 의미인지 모릅니다.

 

 

 

어쨌든 안으로 들어가 볼랍니다. 건물이 아니구요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단체 비석이라고나 할까요. 상당히 현대적 감각의 구조물입니다.

 

 입구로 들어가니 저런 검은 벽이 휘돌아가게 세워져 있어요. 검은 것은 돌이요 흰 것은 이름입니다.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면 저 깨알같은 이름 하나하나 일일이 더듬어 볼 테지요.

 

열린 문이 제겐 이상하게 상징적으로 보였어요. 단지 참배객들의 진로 방향을 일러주는 문이었을 뿐인데요. <트루먼 쇼>의 장면이 순간 떠올랐어요. 바다와 하늘 셋트장에 설치된 문을 트루먼이 밀고 자신의 세계로 떠나버린 장면 말입니다. 저 문을 나가니 검은 벽은 뒷편까지 이어져 있더군요. 뒷편 잔디밭엔 놀러나온 까치가 종종 걸어다녔어요.

 

 

 

 

 

 

수많은 젊은이가 이젠 벽으로 존재합니다. 햇살이 눈부시게 되돌아 옵니다. 묘지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 다녀 봅니다. 어떤 아저씨가 장식용 돌 앞에서 사진을 찍어 달랍니다. 일본 관광객이라고 성급한 판단을 한 거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럴 만했어요. 그 아저씨가 "저..저..."하며 나를 쫓아와선 사진기를 쑥 내밀더군요. 내가 사진기를 받아 살펴보자 아저씨가 먼저 "소니..." 요렇게만 말해요. 아 그러니 제가 그를 일본인 관광객인갑다, 생각할 수밖에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니요. 영.어.로 말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지 뭡니까. 크크크 자다가 생각해도 우습네요. 그 아자씨는 속으로 얼마나 뜨아 놀랬을 겁니까. 여러 장 찍어주고 나니 그가 인사를 합니다. "고맙습니다." 또렷한 경상도 억양으로요. 이번엔 옴마야 제가 놀랬답니다.

  

 

이 묘비석에 와서 저는 우두커니 섰어요. 움직여지지가 않더군요. 다른 묘비석과 달리 아래에 작은 판이

보이네요. 묻힌 사람은 1951년 3월 10일에 31세로 죽었군요. 그로부터 42년이 흐른 1993년 9월 15일에 아내와 두 자녀가 이 묘지를 찾아왔다고 적혀 있습니다. 호호 할머니가 되어, 전장으로 떠날 때의 남편보다 더 늙은 자식들을 데리고 여길 왔다는군요. Loving Wife랍니다. 그 세월을 떠 올리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잘 다듬어진 묘지의 나무나 꽃, 멋진 묘비석에도 덤덤했거든요. 역시 사람은 사람의 역사로 마음이 움직여지는 모양입니다.

 

 

 

 

 

 

 

 

 

 

 

 

 

 

 

 

 

 

 

아, 말로만 듣던 무명용사의 비입니다. 무명용사의 비석은 왜 저리 누르스름한지, 왜 더 멋진 비석으로 위로하지 못하는지 막 따지고 싶더군요. 초라해 보입니다. 저 용사의 어머니와 누이와 연인은 아직도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거나 기억을 잃은 채로 새 인생을 꾸려가고 있다거나 하는 드라마를 기대할지도 모릅니다. 낯선 창령땅에서 숨을 거둔 푸른 눈의 군인입니다. 

 

죽은 이방인보다 더 많이 죽은 이 땅의 병사들이 있었지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라 실감할 수 없는 역사지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타적인 죽음은 가치롭습니다. 마지막 그의 눈에 남은 풍경이 무엇이었나 잠시 생각합니다. 지금도 이라크에 파병된 젊은이들이 있으니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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