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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말 아님30

비 오는 날의 참된 자세 준비물 사망 직전의 부추 한 웅큼 당근 양파 계란 탁 향기로운 올리브 오일 코팅 좋은 테팔 프라이팬 무엇보다 중요한 준비물은 이 비오는 아침, 밥도 아닌 전을 먹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 2023. 5. 13.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NINA SIMONE 가장 최근에 자주 들은 곡. 짙은 여가수의 음색이 지문처럼 흑인의 영혼을 팍팍 풍긴다. 넷플릭스에서 'NOBODY'를 보았는데, 드라마 속에서 지나간 팝송들이 종종 나온다. 나는 달보다 달 가리키는 손가락 주시하는 손가락派라는 거! 드라마 내용은 돌아서면 생각도 안 나지만, 바로 유튜브에서 음악을 찾아낸다는. 간밤의 비바람이 그치고 햇살과 구름이 희다. 멍하니 바라보는 이 찰나적 평온. 2022. 4. 29.
누룽지 효과 오랜만에 누룽지 제조에 들어갔다. 오옷!! 이런 완벽한 자태를 봤나!! 비법을 굳이 말하라시면 건망증이라고 밖에. 웍에 쌀을 안치고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 넓게 웍 옆면에까지 고루 펴준다. 가장 약불로 낮춘 후, 커피 한 잔 들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티비 보며 까맣게 잊었다가, 어느 순간 오마나! 하며 누룽지의 존재를 화들짝 깨닫는다. 뛰쳐나온 거실에는 아슬아슬한 연기가 뿌옇다. 절묘한 타이밍이여, 평생 갈고닦은 동물적 감각 아니겠는가. 집에 불 내지 않고 여태 살아남은 것 보면 말이다. 하지만 다 아시디시피, 대부분의 경우는 불행하게도 이러하다. 절묘한 타이밍이나 동물적 감각은 개뿔. 누룽지 며칠 후의 돈가스 참상이다. 누룽지로 쓸데없이 고무된 자만심이 빚은 아까븐 숯덩이여. 가스불에 뭘 얹어놓.. 2022. 1. 5.
봄바람 양파 봄이 되니 양파가 난리다. 한 두개 아니고 죄다 싹이 올랐다. 심지어 껍질 벗겨 반으로 잘라 둔 양파에서 푸른 심지가 자라 나오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쯤되면 밭으로 가야 하나.... 주인 아지매는 저 푸른 싹 잘라서 실파인 척 쓰고 있다. 2019. 3. 16.
봄 감기 #1 돌이켜 생각해 보면 봄은 언제나 불안하였다. 난 봄이 싫어, 하고 평생 말하였던 근간은 불안이었다. 깊은 겨울의 평화를 이제 반납해야 한다. 원색의 꽃들이 떼 지어 피고 또 지고, 더 이상 뜨겁디뜨거운 차를 마시지 않는다. 곧 창문도 열어젖힐 테지. 그렇다고 불안은 왜. 기우뚱거리는 돌을 딛고 선 듯하다. 큰 흉터를 겨우내 잘 감추었다가 조금씩 드러내야만 하는 그 경계의 심정. 내 흉터를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는데. 해마다 봄은 그러나 별일 아니라는 듯이 지나갔다. 올해도 그러하기를. #2 약간의 두통. 약간의 관절통. 약간의 소화불량. 오늘 저녁은 굶어야겠다, 붕 떠오르게 몸을 가벼이 하고 싶어. 아무래도 떠오르기에는 무리겠지? #3 양말을 벗었다. 맨발에 닿는 바닥의 감촉이 눅눅하다. 지겨운 .. 2018. 4. 4.
노래 한 곡 투척 Josh Groban의 "Per Te". Per Te의 의미는 For You이다. Josh Groban이 앳된 20대 초반에 불렀다. 십수 년도 더 된 곡이지만 새삼스레 요즘 꽂혀서 줄기차게 듣는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영상 속 어린 그는 눈을 감고 노래에 빠진 듯하다. 맑고 청아한, 정직하고 곧은 음색, 군더더기 없는 그 목소리가 어느 순간 슬프다. 지금은 턱수염 무성한 세계 최고의 팝페라 가수가 되었지만 그 원숙미 이전, 다시는 돌아갈 길 없는 푸른 목소리. 피어나기 직전의 아름다움이란 신기루 같은 것. 2017. 5. 25.
저녁밥 밥을 먹는다. 앗, 김치 양념이 뚝 수직낙하 한다. 옷 앞자락을 살핀다. black & white의 줄무늬 티셔츠. 검은 줄은 굵고 흰 줄은 가늘다. 수많은 검은 줄 다 피해서흰 줄에 착륙한 빨간 한 점. 나의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Spring_Day_OST-11.SUB_TITLE.wma 0.67MB 2015. 11. 30.
꽃 부럽지 않은 단풍나무 씨앗. 꽃도 아닌 씨앗이 이렇게 고와도 되능겨? 빨강 씨앗도 보고 싶었는데 만나지 못했다. 쟈가 빨갛게 익는 건지, 빨강 씨앗은 처음부터 빨강색인지 궁금해서 단풍나무만 보면 달려가 확인사살 했다. 남 다 아는 것을 이제야 알고선 환호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 아는 순간이 존재하는 법이고 그 순간이 좀 늦었다고 무식의 증거가 될 순 없어, 라고 억지 쓴다. 대신 내가 남보다 먼저 알았던 것도 있을 테니 쌤쌤이야, 라고 택도 없는 가설도 만든다. 이미 씨앗 주머니들이 꼬부라지고 있던데 올 봄 빨강 씨앗은 틀렸다. 내년 봄을 기약하기에는 나는 심드렁병에 걸렸다규. 2015. 5. 19.
명절 다가오건만 조카 두 녀석이 마흔이 곧이건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흔히 노총각, 노처녀들은 명절에 친척들 만나기 무섭다는데 이넘들은 꿋꿋하다.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갸들을 닦달하기는커녕 발 벗고 나서지도 않는다. 결혼은 지들이 자발적으로 알아서 할 과제라고 여기는 것이다. 얼마 전 친정아버지, 즉 애들에겐 외할아버지께서 지나가는 말처럼 실쩌기 "요즘은 이혼도 아무따나 잘도 하데? 니도 그럴 각오하고 일딴 결혼부터 하지 그래?" 꽁무니 뺄 뒷문까지 열어 보이시며 너그럽게 말씀하셨다. 이것들이 결혼에 애타하지 않는 요인 중 나도 한몫 보탠 것 같아 대차게 나무라지 못한다. 이모는 가니까 좋았어요? 라고 물으면 답이 없잖아. 질녀는 컴퓨터 회사의 과장이자 시인이다. 월급 50%를 책값으로 낭비하느라 모아둔 돈 한 푼 .. 2015.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