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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지우고 또 지우고

by 愛야 2008. 1. 11.

컴퓨터 열기가 싫다. 늙은 컴퓨터가 내뱉는 중증의 헐떡임을 고스란히 견디기 귀찮아서이다.

 

 

느린 타자 솜씨는 내 잘못이라고 치자. 하지만 블로그 둘러보는 고 알량한 동안에도 응용 프로그램 초기화에 실패했다는 창이 몇 분 간격으로 뜬다. 확인을 두 번 거퍼 뿅뿅 눌러주면 말썽 일으키지 않고 사라지는데 그럴거면 뭐땀시 자꾸 출몰하는지 모르겠다.

 

이젠 어디어디 들어가서 뭐뭐를 제거하고 싶지도 않아 포기하고 공생했다. 게다가 툭하면 리소스 부족해서 못하겠다고 뒤로 나자빠진다.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 느린 거야 당연 기본이다. 성질 급한 사람은 열두 번 기절해도 할 뜸을 들인 후 사이트가 열린다.

 

얼마 전부터는 주소창이 이층으로 뜬다. 아래위로 포갤 일이 남녀상열지사 말고 또 있다는 말이다. 얼씨구, 급기야 이젠 삼층으로 나란히 뜬다. 몇 층까지 포개나 한번 두고 보자 싶어 마냥 냅둔다. 

 

블로그 이웃을 방문한 후 아웃하면 열어둔 다른 집 창까지 손잡고 일제히 다 닫히는 현상까지 보인다. 처음부터 다시 인터넷 열고 블로그 가고를 반복해야 한다. 아니면 아래 작업 표시줄을 꽉 채우도록 x에 클릭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다른 것은 참겠는데 이건 너무 번거롭다. 마실을 다닐 수 없잖은가.

 

할 수 없어 어제밤 제어판을 열었다. 세상의 온갖 악성코드는 다 들러붙어 있는 듯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 위장한 것, ~툴바, ~search,~cash 등등 다 지운다. 지우고 또 지운다. 많기도 하다. 식별 능력도 없는 컴맹 주제에 중요 프로그램을 지우지 않나 두려움이 살짝 들지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싶어 과감하기로 한다.

 

지우고 닫아두었던 컴퓨터를 오늘 아침 연다. 언제나처럼 로그인 창에 내 모습이 짠 나온다. 두 여자의 몸매 중 물론 after 아니고 before다. 로그인 할 때마다 자화상 확인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Daum에 물어 봐야지.

 

다행히 주소줄 표시가 단층이다. 속도는 좀 빨라진 듯하고 몽땅 창 닫히는 현상도 사라졌다. 하지만 이 글 올리는 동안 여전히 5번 정도의 오류 메세지 창을 극복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주시라. 정말 착한 주인 만나서 살아남은 줄 컴퓨터가 알아야 할건데.  

 

컴퓨터도 사람처럼 연식이 오래되면 나쁜 코드들이 마음 놓고 더 달려드는 모양이다. 노인이 되면 감정도 약해지고 귀도 얇아져서 젊었을 때 도저히 하지 않을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지 않은가. 다만 사람은 지우고 또 지운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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