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날

오전 일상

by 愛야 2008. 4. 30.
 

욕실에서 아들이 머리 감는 소리에 잠을 깼다. 6시 40분인가 보다. 깨우는 일로 엄마 진을 빼지 않는 점은 키우면서 참 고마운 부분이다. 깰 때 뿐만 아니라 잠을 자는 순간도 잠투정 없이 5초 안에 잠들곤 했었다. 그래서 고상하게 동화책 읽어 줄 틈이 없었다.

 

오늘부터 아들의 중간고사 시험이다. 어제 야자 빠지고 집 근처의 지역도서관에 있다기에 도서관 마치는 11시까지 공부하고 올 거냐고 물었다. 아들은 시험 전날에는 일찍 자 줘야 한단다. 그럼 시험 전전날 또 그 전전날은 왜 일찍 잤는지 안 물었다. 시험기간에 평소보다 이르게 11시 넘으면 주무시는 아들이지만 엄마는 무서워 나무라지 않았다. 게임하고 놀 바엔 차라리 잠을 더 자는 게 이롭다고 생각한다.

 

아들은 과연 10시경 집에 오더니 게임 채널 보면서 밥 먹고는 자기 방으로 갔다. 혹시 공부라도? 아니었다. 책가방까지 싸 두고 바로 잘 태세였다. 그러더니 좀 있다 벌컥 문 열고 다시 나왔다. 이상하게 긴장이 된다네? 수학을 이리 많이 했는데 점수가 안 나오면 우짜노 싶어서 안정이 안 된다네? 흐흐 소심한 A형 같으니. 그것도 나노 A형.

 

그렇게 일찍 잤으니 일찍 일어난 것은 당연하다. 아들이 등교한 후 거울을 흘깃 보다 화들짝 놀랐다. 누르팅팅하고 탄력없는 얼굴은 여느때와 다름이 없지만 저 강렬한 시커먼 눈은 뭐냐! 나는 어제 저녁 맹세코 세수하려고 했었다. 단지 그러기 전에 스르르 잠이 들었을 뿐이다. 잠시 정신이 든 새벽 2시, 그때까지 거실이 불 켜진 채로 환했다. 나는 불만 팍 끄고 다시 기절했다. 그 결과 온통 마스카라가 번져 눈 아래가 꺼먼 것이다. 팬더가 되었다.

 

세수하는 사이 커피물이 끓었다. 커피 한 잔 들고 하늘을 보니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뿌연 푸른빛이다. 햄릿 누나처럼 "To be or not to be" 해쌓는 사이에도 세월은 모범생 같아서 어느새 4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한 해의 딱 1/3 이 갔다. 도무지 믿을 수 없지 않은가.

 

 

 

 

 

                                                                                                  

'그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폼 구긴  (0) 2008.05.20
해방된 엄마  (0) 2008.05.12
나는 울지 않는다  (0) 2008.04.23
도전기  (0) 2008.04.04
하루  (0) 2008.03.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