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기필코 고구마 맛탕을 해 줘야 할 모양이다. 고구마 한 박스를 다 먹어가는 이 싯점까지 하지 않으니 녀석이 가출할 듯한 기세다." ㅡ 이것이 얼마 전이었다. 나는 그날 고구마 맛탕을 컴퓨러 앞까지 배달하였다. 녀석은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가출할 마음을 접고 힘을 내어 밤 12시 반까지 아이언 게임에 매진하였다. 요 며칠 혹독한 추위에 시달린 탓에 주말동안은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고 싶었다. 나를 해동시켜야 했다. 그저께 녀석이 컴퓨터 앞에 앉은 채로 점심으로 뭐 줄 것인가고 이불 속의 나에게 물었다. 주문에 맛들였나 보았다. 나는 뭐 줄까 하고 되물었다. 녀석이 스파게티...하며 운을 떼었다. 묵살했다. 사실 물어본 의미는 없었다. 내가 줄 점심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녀석이 어제 다시 점심으로 뭐 줄 것인지 물었다. 나도 다시 뭐 줄까고 되물었다. 역시 스파게티! 한다. 그냥 찔러 본 메뉴가 아니었나 보다. 녀석은 아마 내일도 스파게티 타령을 할 것이다. 이쯤되면 도리가 없다. 냉장고를 보니 스파게티 국수가 참으로 어중간하게 남았고 소스는 아예 없다. 사러 나가야 한다는 결론이다. 에잉...주섬주섬 장바구니를 챙기며 머리를 스치는 생각. 며칠 전 고구마 맛탕을 해 주지 말았어야 했다
#2.
컴퓨터와 밥상과 화장실의 삼각형 구도만을 하루종일 오가는 녀석이 주말을 기다린다. 백수생활에 주말이 뭔 의미가 있는가. 이유는 주말 드라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某민정이라는 여자탤런트 때문이다. 그 여자탤런트를 보기 위해 게임스케줄과 외출시간마저 조절한다. 일주일을 목빼어 기다리던 드라마 시간이 드디어 되면, 껌처럼 떨어지지 않던 컴퓨터를 사뿐히 떠나 테레비죵 앞으로 이동한다. 입가에는 웃을 만반의 준비가, 눈에는 광선총알이 장전되었으며 손에는 친구와 문자를 나눌 손전화기가 들려있다. 자, 시자악. 나도 이쁘게 보았던 탤런트였다. 분위기도 있고 귀염성도 있다. 우수를 표현해도 좋은 눈매다. 요즘의 비슷비슷한 인조얼굴에 비해 자연산 같다. 하긴 자연스럽게 튜닝을 하였는지는 몰라도 결과가 성공작이면 된 거다. 그렇기로서니 나까지 광팬이어야 할 필요는 없건만 우리집 컴퓨터 모니터를 켜면 그 탤런트 얼굴이 먼저 방긋 반긴다. 나도 녀석의 돈 안드는 사랑에 동참해 준다. 가령, 아들아 <민정이 오기 전>까지 밥 먹고 게임도 해 둬라, 이렇게 말이다. 드라마 시작한다는 말 대신 <민정이 오다>고 했더니 재미있어 킬킬대던 녀석 이제 스스로 그 표현을 잘 써 먹는다. 일요일 드라마가 끝나면 허탈한 녀석의 탄식은 참으로 가련하다. 아아, 우찌 일주일을 또 기다리노...진짜 올 여자를 사랑해야지 얌마. 그 <민정이가 오는> 오늘 밤 10시에도 녀석은 화면 앞에서 지가 주인공 된 양 몰입하리라. 휴우, 나는 그제서야 컴퓨터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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